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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04. 2024

나만의 레시피

뭐든지 내 맘대로 만드는거지 내가 먹을거니까.

남편과 아들 둘. 우리 집 남자 셋의 최애음식은 단연 라면이다. 마약 같은 MSG의 맛을 거부할 수 없는 데다 한 달에 라면을 허락하는 횟수가 한두 번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떻게 맛이 없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먹어도 먹어도 애달프고 질리지 않는 라면이다.


나는 라면을 잘 끓인다. 맛있게 끓인다. 그런데 우리 집 세 남자는 나에게 라면을 맡기지 않는다. 다른 음식은 모두 엄마인 내가 하는데 라면만은 절대 못 끓이게 막는다. 그들은 라면 본연의 맛을 원한다. 그런데 나는 그냥 끓이면 허전하고 밋밋해서 싫다. 


일단 기본적으로 양파, 파, 당근, 애호박을 채 썰어 넣는다. 라면 종류에 따라 다진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더 첨가할 때도 있다. 어떤 라면은 어묵을 넣으면 맛있고, 어떤 라면은 콩나물을 넣으면 맛있다. 그 정도는 넣어 먹어야 라면 먹은 후 만족스럽다. 라면봉지에 부록처럼 들어있는 건더기스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다양하고 푸짐한 라면이 좋은데 가족들은 나의 라면을 거부한다. 특히 남편은 질색팔색을 한다. 대기업 연구원들의 심사숙고 끝에 만들어진 최상의 레시피가 봉지에 떡하니 적혀 있는데 왜 마음대로 끓이냐고 나무란다. 내가 라면에게 못할 짓을 한 사람처럼 군다. 


신기하게도 라면 끓이는 취향이 삶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있다. 사실적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학습하는 방식은 늘 재미가 없다. 어디서 배운 것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책을 읽어도 저자가 이야기한 내용을 그대로 익히거나 소개하는 일은 어렵다. 


누군가 이미 정해놓은 것대로 하는 것보다 좀 이상하고 부족하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 나만의 방식, 나만의 취향으로 음식도 삶도 내 레시피대로 만드는 것이 진짜 내 것 아닐까?


점점 고민이 많아진다. 세상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치게 된 것처럼 식품시장엔 너무 많은 종류의 라면들이 쏟아지고 있다. 먹어보고 판단하고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존의 것과 내 것이 합해지면 언제나 또 다른 새로움이 창조된다. 라면 끓이는 법도 살아가는 법도 결정은 내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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