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밝음 Apr 09. 2024

배터리 용량 부족인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살아갈래요.

약속이 생기면 즐거우면서도 무섭다. 사람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참 좋다. 그런데 문제는 헤어진 뒤다. 함께 있을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헤어지고 나면 내 배터리는 그제야 소리를 낸다.


"주인님 에너지 용량을 초과하셨습니다." 


오랜만에 친한 언니를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다도 보고 좋았다. 하지만 오늘도 다녀온 후에는 넉다운이다. 손가락도 까딱할 힘이 없다. 에너지 결핍자인 나는 나가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형들이 부럽기만 하다. 


사람도 기계처럼 배터리 용량과 수치를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알면 그만큼 충전하고 그만큼 잘 사용도 할 수 있을 텐데 기민하게 스스로를 알아차리지 않으면 이내 무리한 시간들로 나를 괴롭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배터리 용량 자체가 큰 건지 한 번 쉬고 나면 풀 충전되어서 하루종일 거뜬하다. 한 번에 쓸 수 있는 에너지도 많고 더 오래 사용가능하다. 오히려 에너지를 써야 배터리가 더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간 한마디로 절단난다. 


나는 용량 자체가 작은 배터리 같다. 금방 방전되고 금방 충전된다. 충전 용량 자체가 작다 보니 에너지 보유량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잘 알아차려야 하고 잘 조절해주어야 한다. 예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다. 그러다 보니 며칠을 못 일어나고 한 번 밤새고 나면 일주일 동안 회복이 안 되는 삶을 살았다. 친구들은 하루 쉬고 나면 금방 원상복구가 되는데 왜 나는 체력이 안 좋냐며 속상해했다. 사람마다 다를 뿐이라는 걸 이제야 받아들인다.


욕심이 앞서면 몸을 망칠 수 있다. 내가 어떤 에너지 성향인지 파악해서 적절하게 돌봐야 하는 것 같다. 비교할 필요도 없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고 내가 가진 몸으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게 먼저다. 분명 체력 좋고 신체조건 좋은 사람들은 또 자신만의 재능으로 이 세상에 해야 할 일들이 따로 있을 것이다. 에너지가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또 그답게 다른 재능들을 부여받아 그것을 빛나게 하기 위함일 것이라고 믿는다.


짧게 치고 빠지기, 조금씩 자주 하기, 작은 성공 많이 쌓기. 

소소한 기쁨 느끼기, 자주 웃기고 행복하기, 일상적 감사 느끼기.


배터리 작은 내가 살아가는 나만의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속도 나의 걸음대로 잘 쉬어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천천히 느리게 살다 보면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저 자세히 볼 수 있겠지 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의 레시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