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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16. 2024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꼬마의 세상구경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목적지가 있어서 즐거웠고, 목적지에 가는 동안 만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즐거웠다. 내 목적지는 집이었지만 내가 담고 가는 건 늘 세상의 것들이었다. 이것저것 보고 듣고 느끼면서 내 마음을 만나고 키워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늘 나의 하교시간은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학교일과가 끝나면 교문 밖으로 나간다. 일단 가장 먼저 정면에 나란히 있는 문구점 세 개가 보인다. 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것 같지만 분명 달랐다. 대부분의 학용품과 군것질들이 동일했지만 끌리는 집이 따로 있었다. 물건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달랐고 주인아주머니의 친절도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나는 대부분 두 번째 집을 이용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물건을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게 배치가 되어있었고 뭐 살 거냐고 묻거나 하지 않으셔서 편안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하교하는 날에는 신중해야 한다. 여기서 돈을 쓸 것인지 아껴두었다 그다음 참새방앗간에서 쓸 것인지의 기로이기 때문이다. 문구점에서의 지출여부가 다음 행보에서 주인공과 구경꾼으로 나를 나누게 된다.




문구점을 나가 학교 담벼락을 돌아서면 곧바로 달고나 할머니가 판을 깔고 앉아 계신다. 그 시절 부산에서는 달고나를 쪽자라고 불렀다. 쪽자가게는 마의 구간이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녀석들은 이미 미래에 뭐라도 될 놈들이다. 어린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뼛속 깊숙이부터 자극하여 그곳에 머물게 하는 달콤한 유혹의 장소다. 쪽자판에 뛰어드는 애들은 일단 모험을 자처한 영혼들이다. 


별, 오리, 하트 등 바늘로 그 테두리를 콕콕 찔러서 안과 밖을 정밀하게 분해한다. 분해에 성공하면 쪽자를 하나 더 얻을 수 있다. 시험 100점 맞는 기쁨 따위는 소극적 기쁨이 된다. 하지만 하다가 분해에 실패하면 반으로 뚝 잘린 못생긴 모양의 쪽자와 함께 아쉬움과 속상함을 덤으로 받는다. 몸에 좋지도 않은 쪽자에 목숨 바쳐 살았던 지난날의 어린 영혼에게 위안을 보낸다.


쪽자실패의 슬픔이 있어도 친구랑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가다 보면 금세 슬픔은 사라지고 없다. 그땐 알았나 보다. 감정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낸 찰나의 불순물뿐이라는 걸 말이다. 깔깔낄낄 떠들며 골목을 걷는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들은 하하호호 웃지 않는다.) 




다음 골목으로 꺾이기 전에 우리를 반기는 석류나무가 있다. 지금은 아이들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지만 그때의 우리는 우리 동네에 있는 건 다 우리 거인 줄 알았다. 누가 사는지 모르는 금칠 대문의 집에는 예쁜 석류나무가 살고 있었다. 예쁜 아이라 마음도 착했는지 우리 먹으라고 늘 나뭇가지 팔 하나를 담벼락 밖으로 내밀고 흔들흔들 대고 있었다. 세 번째 참새 방앗간에서 맛있는 석류를 따 먹었다. 먹어서 배부른 간식은 아니었지만 알알이 박힌 석류를 보면 뭘 많이 가진 기분이었고 빼서 먹으면 그 신 맛도 재미있었다. 뉘신지 모르는 주인댁에게 늦게나마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 골목 끝에는 내가 좋아했던 친구 유경이가 살았다. 일층은 좋은 소식 갖다 주는 새 그림이 있는 페인트 가게였고 이층이 유경이 집이었다. 유경이와 같이 하교를 하거나 길가는 길에 유경이와 눈이 마주치면 그 집에 놀러 갈 수 있었다. 단발머리에 뽀글 머리 파마를 하고 토끼처럼 작은 핀을 양 옆으로 꽂았던 유경이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전학을 안 갔다면 더 오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주 마음이 어수선한 일이 있었다. 좀 오래 걷고 싶어 걷다 걷다 보니 결국 광안리까지 가게 되었다. 그때가 그리워 학교로 가서 내가 좋아했던 그 하굣길을 걸었다. 학교는 새 건물을 짓고 많이 변해서 이미 예전의 자태가 없었다. 그런데 반갑게도 문구점 하나가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쪽자할머니는 당연히 없고 석류나무도 없었다. 유경이가 살지 않겠지만 페인트 가게는 그대로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하굣길에 있던 집들은 작은 카페로 변신해 있었고, 석류나무집 근처쯤에는 예쁜 석류나무 대신 예쁜 그림책 책방이 들어서 있었다.


오랜만에 걷는 이 길 위에 있어서 행복한 날이었다.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온전히 행복했던 그 집으로 향하는 길.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고 행복한 품이 있어서 세상 구경이 즐거웠던 그때. 오랜만에 그 행복을 온전히 누렸다. 오랜만에 갔던 옛 동네에서 모든 행복의 기억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더는 가질 수 없는 행복이 아니라, 무한정 꺼내어 쓸 수 있는 나만의 행복상자가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나의 편안한 집이 되어주려 한다.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느끼면서 더 자주 가슴 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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