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읽고
평생직업?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포부는 이제 임원들도 안 믿는다.
겸업금지? 직장인인 동시에 책을 쓰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규제는 쉽지 않다.
직업으로 하는 자아실현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 내게는 당연한 하나의 길이자 목표였는데,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우회로가 존재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고 당차게 살아가는 프로겸업러의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인 일러스트 외의 일을 하고자 목표 삼은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며 생계유지를 하기 위해 청소일을 '겸업'으로 택했다. 사실 겸업이란, 주된 작업 외에 다른 일을 겸하여함을 의미하지만, 이 책의 저자의 일은 주 업무가 어떤 업무인지는 정의되지 않는다. 편의상 이 단어를 선택했다. 앞으로 이런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가 생겨나지 않을까.
저자는 두 개의 업을 병행하는데서 오는 경험들도 풀어내지만, 현재 자신의 업무 형태를 설명하는데서 오는 어려움과 새로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겸업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까 망설이게 되는 나의 독후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범하지 않아 특별한 그녀를 납득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있다. 예를 들어, 무슨 일 하세요?라는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어렵게 설명했음에도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무엇보다 평범한 상태에서 벗어난 이 시대의 청년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경쾌한 일러스트로 그려낸 그녀의 청소일이 궁금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겪는 자신에 대한 불안함과 타인을 이해시키는데 오는 피곤함에 대한 결과물을 마주하는 것 같아 책을 덮을 쯤에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업을 수행하는 것'조차도 벅차고 응원받아야 하지만 '업을 위해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표현하지 못할 새로운 고단함이다.
세계여행하겠다며 휴학 후 알바를 병행하고 있을 시절의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던 고단함이다.
내 돈 모아서 아프리카로, 인도로 여행을 가겠다고 기뻐하는 나를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되었다.'라는 말로 응원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몇 없었다. 부모님조차도 (물론 나를 걱정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알고 있다.) 극심히 반대하고 알바를 나갈 때 조차도 축 처진 기분으로 나가게 할 만큼 모진 말들을 가끔 쏟아내셨으니 말이다. 그 업을 해내고 싶은 이유도, 해야 할 이유도 온전히 말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온 몸속에서 소리치고 있는 것만은 알았다. 여기를 벗어나서 더 큰 세상을 만나야 한다고, 굳게 확신이 차있었다.
도전하는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은 양의 충고와 의구심이었다. 왜 세계여행을 하려 하니, 유럽 같은 곳이 난 더 좋더라, 영정사진을 찍고 나서라, 인도는 위험하지 않니? 등의 말을 들으며 체력적으로도 지친 나는 정신적으로도 지쳐갔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설명을 하다가도, 아직 겪어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변명과 나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설명하기를 그만둬야 했다. 설명을 포기하고 체념하다 보면 그들의 부정적인 말만을 듣고 있어야 했고,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로 쌓여 새벽마다 그들의 걱정과 우려는 배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버텨낼 수 있었던 건 Audition과 같은 노래, La La Land과 같은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OST를 몇백 번 반복 재생하며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사람,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세상 밖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거라 믿으며 버텨냈다.
She told me
"A bit of madness is key
To give us new colors to see
Who knows where it will lead us?
And that's why they need us"
So bring on the rebels
The ripples from pebbles
The painters, and poets, and plays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Crazy as they may seem
Here's to the hearts that break
Here's to the mess we make
I trace it all back to then
Her, and the snow, and the Seine
Smiling through it
She said she'd do it again
- La La Land OST, 'Audition'
아니나 다를까, 여행을 나가자마자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앞으로 1년 동안 여행을 할 거라니, 부럽다, 응원한다, 라는 말들이 태반이었다. 혹은 드물게 나도 그렇게 여행 중이니 우리 함께할까, 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업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의 감격과 연대감은 아직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안도감과 자신감을 준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위험한 곳으로는 여행을 가는 게 아니야, 연기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청소노동은 젊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야, 라는 말들은 충고도 아니고 조언도 아니다.
부디 이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그 어떤 이유에서든 원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용기가 본보기가 되어, 편한 길이 아니라 해서 그 사람의 길을 충고와 조언으로 위장한 모진 말들로 위협하는 일이 조금씩 없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