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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 Apr 28. 2020

책이 밥 먹여주냐

『출판하는 마음』을 읽고

사실 나는 초판 인쇄라는 말을 이해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직업 안내서 겸 인터뷰집의 목적으로 펴냈다는 이 책을 알게 된 건 현재 정기 구독하고 있는 일간 연재 '어떤 요일'에 금요일의 빙고 책방 주인인 김지혜 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천 테마는 직업인이 자신의 일에 대해 쓴 책이었는데, 어찌 뒷부분에 인터뷰이로 김지혜 님이 등장한 건 왠지 모르게 낄낄대게 되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글들 뒤에 숨어있는 서점인이라는 본업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술래잡기의 술래가 된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는 김지혜라는 서점인 외에도 책이 발행되기까지 거쳐가야 하는 모든 과정의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편집자, 북디자이너, 출판 제작자, 번역자 등의 업을 행하고 계신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제는 책 뒤에 적힌 알쏭달쏭한 사람들, 옮긴이. 펴낸이. 편집. 용지. 인쇄. 제본. 에 대한 역할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어 그 이름들이 반갑다. 무엇보다 하나의 책에 들어간 수많은 노고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모든 인터뷰이가 자신의 업에 대해 이렇게나 할 말이 많다는 건 그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내 알아차림이 이제야 시작되었다는 게 부끄럽기까지 하다.



나쁜 마음으로 하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




이 외에도 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책의 엄숙주의를 버리고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또 다른 시각이 보일 것이다.

인터뷰 속에는 '책장사'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결국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인 만큼, 책을 가까이하며 일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뿐일 것이라던가, 책을 많이 읽어 고급 취향의 엘리트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던가, 하는 상상을 멈추게 하기 위한 장치 같다. 책이 좋아 일을 시작한 사람들인 만큼, 좋아하는 책 (혹은 분야)와 대중들이 좋아하는 책 (혹은 분야) 사이의 괴리가 존재한다. 그 괴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가깝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또 다른 숙명으로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훈 같은 작가의 책은 나오기만 하면 바로 베스트셀러다. 내용에 대한 별다른 평가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점이 띄워주고 밀어주는 게 다 자본에 물든 상업주의로 보였다. 그건 '책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며, MD를 포함한 독자의 안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자, 책의 정신보다 상품의 본성 혹은 물성이 출판 시장을 움직인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책은 상품이라는 감각이 내겐 없었고, 그에겐 본능적으로 내재된 듯 했다. 팔릴 때의 기쁨이 크다, 많이 팔리는 책엔 미덕이 있다, 대중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는 그의 말은, 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책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시 한번 묻게 했다.

- 은유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 중에서

우리도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닌 책을 만났을 때, 엄숙하게 그 책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리고 돌아서지만 말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과 좋아해 줄 사람들에 대해 환기해보는 것도 좋은 시각이 될 것이다.


2. 작가는 책의 전부를 만드는 것이 아닌 글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책은 작가가 전부 다 해낸 결과인 줄 알았다.... 책을 집어 들면 작가와 출판사 이름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되니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내가 만난 작가들은 거의 독립출판 작가들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독립출판 외에 출판사를 거쳐 만들어지는 책들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작가가 어디까지 기획했고 써낸 건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상의 품질의 글을 제공해주는 작가도 있는 반면, 프로의식없이 해치우듯 글을 납품하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출판시장의 노동자들의 희로애락이 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3. 전자책이 출판시장에 가져다주는 변화는 무엇일까.

 이름도 요상스러운 '이북리더기'의 등장과 전자책의 상용화는 제본과 인쇄 시장을 포함한 출판업계를 계속해서 긴장시킬 것이다. 전자책으로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책은 더욱 소장하고 싶은 상품이어야 한다는 이경란 북디자이너 님의 말씀에 백번 공감한다. 디자인과 재료가 어우러져 속지와 표지를  만들어냈을 때, 그렇게 해야만 전달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때, 종이책은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출판하는 마음, 344p,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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