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꼬마였을 때 할아버지는 소주를 사이다라고 속여 나에게 먹이곤 했다. 나는 매번 할아버지의 말에 속아 넘어가 소주를 맛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이번에는 절대 안 믿어." 라고 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진짜야."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보자 해서 투명한 액체를 한 모금 크게 들이키면 그것은 어김없이 소주였다.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할아버지는 내 손이 닿지 않는 서랍장 위에서 ‘사랑방 선물 캔디’를 꺼내 입에 넣어주었다. 꺽꺽 분해하며 울다 가도 캔디가 입에 들어오면 울음은 곧 훌쩍거림으로 바뀌었다.
당시 나는 밤에 화장실을 혼자 못 갈 정도로 어렸음에도 미래 직업과 신랑감은 확실히 정해 놓았다. 직업은 한의사, 신랑은 유승준이었다.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자신이 유승준의 아버지와 절친한 사이라며, 내가 작은 사고라도 치면 시아버지한테 가서 미래 며느리 얘기해 줘야겠네, 라고 말했다. 때문에 나는 한동안 할아버지 앞에서 착한 아이가 되려 무던히 애썼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물컵을 식탁으로 옮기다가 놓쳐서 깨뜨렸는데, 컵이 깨진 것보다, 그래서 양말이 물에 젖은 것보다, 유승준과 결혼을 못 한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나는 엉엉 울었다. 할아버지는 동그란 캔디를 입에 넣어주며 "승준이 아버지가 말해준 건데 승준이는 씩씩한 여자를 좋아한다더라." 하며 나를 달랬다. 그러곤 서랍장에서 이쑤시개를 꺼내 할아버지에게 침을 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코를 두 번쯤 먹고 맥을 짚으면서 내가 침도 놓을 수 있다고 유승준 아버지에게 꼭 알려줘야 해 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고는 “알겠다 이놈아” 라고 대답했다. 나는 크게 눈웃음 지으며 껄걸 웃던 할아버지의 표정을 여전히 기억한다. 누군가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면 나는 할아버지의 그 웃음과 함께 사랑방 선물 캔디와 이쑤시개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