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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사람 Apr 06. 2022

오늘 생각 - 열등감은 좋은 감정이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동력



 자존감을 말할 때 열등감은 나쁜 감정처럼 비친다. 자존감이 사람들에게 중요해진 이유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나보다 성공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사람들은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로 비친다. 남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나는 그들을 보면서 박탈감을 겪는다. 내가 잘 못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5천만 인구 모두가 수백억 부자가 될 수 없고, 모두가 회사 대표가 될 수 없으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지금을 지키기 위해 자존감을 찾았던 것 같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나 또한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에서 자존감까지 놓치면 무엇이 남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자존감과 관련된 수많은 서적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그렇게 내가 정의한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문제는 열등감이었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는데, 내 마음속에 열등감이라는 존재는 나와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자주 찾아뵙던 상담사 분을 찾았다. 사실 내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 정답을 가지고 있었다. 자존감과 열등감 둘 중에 열등감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어쩌면 내 정답에 확신을 갖고 싶어서 상담사 분을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상담사 분의 대답은 내 생각과 달랐다.


 

 "열등감도 좋은 감정이에요"



 순간 당혹스러웠다. 나에게 자존감을 이야기하던 상담사 분이 열등감이 좋다고 하니 당혹스러웠다. 그렇지만 이후에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갔다. 상담사 분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열등감 또는 부럽다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감정인데 숨기는 것도 감정 소모가 된다.

2. 부럽다는 감정은 나를 성장시키는 강력한 동기이다. 없으면 발전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3. 밸런스가 중요하다. 높은 자존감이 항상 옳지도 않고 열등감이 항상 나쁘지도 않다. 


 

 이 말을 듣고 순간 머릿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자수성가한 스타트업 대표님들이다. 직접 만나서 자주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분들의 히스토리를 대략 알고 있었다. 그분들이 술 마시면서 했던 이야기 중 공통점은 "열등감"이었다. 물론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실현하고 난 후에 열등감이 보이지 않았지만 시작점은 "남들보다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열등감을 숨기면서 감정 소모 할바에 당당히 드러내고 더 높은 이상을 향해 가는 동력으로 삼았다. 3,000억 원의 자산을 가진 대표님은 1조를 가지고 있는 다른 회사 대표님이 부럽다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고도 했었다. 


 그 대표님들과 나와의 차이점이 있었다. 그들의 열등감은 자기 자신을 향했고, 나는 남을 향했다. 대표님들 본인이 열등감의 대상을 뛰어넘길 바랬지만, 나는 열등감의 대상이 나보다 낮아지길 바랬다. 그래서 내 열등감은 성장 동력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열등감을 짊어지는 사람과 해소하는 사람과의 차이였다. 


 한 동안 고민했던 생각이 정리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만 편해져서는 안 되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열등감을 부럽다는 표현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등감은 나를 너무 낮추는 단어 같아서이다. 두 번째로, 부럽다는 감정 자체도 내가 가진 감정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욕심을 가진 내가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세 번째로, 부럽다고 느끼게 해 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잘난 것이 욕먹을 이유는 아니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정직하다는 것이 절대적 기준인 양 생각했지만, 자라다 보니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무조건적인 겸손 뒤에는 자만이 숨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재미를 주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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