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
※ 이 글은 유튜버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자녀를 둔 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취미 생활이라면 한 번 해보라고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2010년 초반,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미디어 시장에서 유튜브 영향력은 높지 않았다. 당시 육성하던 아프리카TV BJ들에게 유튜브를 하자고해도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유튜브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거의 반강제적(?)으로 그들의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다. 그렇게 100만 유튜버(당시에는 메가톤급 구독자 수치였다)들을 육성하면서 크리에이터 프로듀서라는 직업 아닌 직업이 생겼다. 이 후로도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지만 200~300명 정도의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일했다. 그 중 제로베이스에서부터 시작한 크리에이터들도 상당수였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크리에이터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지는 않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찾아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가장 많이 찾아오시는 분들은 유튜버를 꿈꾸는 10대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다. 내 주말이 없어질 것 같아서 비용을 받고 진행했지만 그럼에도 매주 일요일이면 부모님들을 뵌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자녀분과 뵙고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의 고민을 해결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혹시라도 더 많은 도움이 될까 싶어 간단한 부분들은 글로 써보기로 했다.
우리 아이가 성공한 유튜버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상담의 큰 맥락은 "유튜버를 해도 되냐"이다. 이 말 속에는 2가지 질문이 내포되어 있다. 유튜버라는 직업의 문제점과 자녀의 가능성을 물어 본 것이다. 이 중 자녀의 가능성은 내가 함부러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유튜버는 연예인이 아니다
내가 도맡아서 육성시킬 것이 아니라면 절대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영화, TV 프로그램 등과 같은 연예인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아니다. 연예인들은 활동 영역이 넓어지긴 했지만 일종의 직업군처럼 역할이 분배되어 있다. 트렌드에 따라 변화하긴 하지만 역할군에 맞는 재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연기자라면 연기를 잘하고,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의 성공 사례를 데이터 삼아 나름의 방식으로 정형화시킨다. 그래서 가능성 있는 재능을 확률 높게 찾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 예능인은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예능인 또한 특정 포맷(TV프로그램)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유튜버만큼 다양한 성공 가능성이 필요하지는 않다.(그렇다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절대 쉬운 일은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활동 영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힘들다.)
하지만, 유튜버는 역할군이라는 것이 없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인 부분(알고리즘 활용법, 썸네일 만들기, 광고 수익 극대화 등)에서의 과거 성공 데이터는 모르겠지만, 카피가 빠른 이 시장에서 역할군에 대한 과거 성공 데이터만으로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다. 오히려 과거 데이터 기준으로는 성공 방정식에 포함되지 않지만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색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더욱 희망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튜버는 특정 컨셉을 정해놓고 "하면서 재능을 찾아야 하는 시장"이다. 어떤 유튜버도 처음과 현재가 같은 사람이 없다. 테마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주고 더 사람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는 매력을 창출해나간다. 이러한 재능의 가능성을 몇 시간 안에 말 몇 마디로 판단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을 길게 쓰는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과거 성공 데이터만으로 육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보여서다. 욕먹어도 아닌건 아니다.)
유튜버는 호수 위의 백조다
부모님과 함께 유튜버를 하고 싶다고 함께 온 자녀 대부분은 유튜버에 대한 희망적 시각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희망적 시각과 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시각을 교차해서 판단하길 희망한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나중에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메가급 유튜버들이 하루 아침에 유튜브 채널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람들은 그들이 미쳤다고 하지만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정말로 큰 성공을 목표로 한다면 무조건 좋아하는 것으로 유튜브를 하라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내 콘텐츠마저 싫어지면 채널을 닫아버리는 것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한창 바빴을 시기, 내 하루(업무 시간이 아닌 일상을 포함해서)의 90%는 유튜버들과의 상담으로 쓰였다. 유튜버들은 수 많은 악플, 구독자와 조회수에 대한 압박, 쉬는 날을 떠나 휴식 시간도 없는 일상과 자신을 카피해서 성장하는 경쟁자들로 인해 하루하루 지쳐간다. 혹시 라이브 방송이라도 같이 한다치면 자신을 위해 사는건지, 유튜브를 위해 사는건지 알 수가 없다. 아직 사회 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이 친구들이 기댈 곳은 같은 유튜버와 같이 일하는 매니저 또는 회사 식구들 뿐이다.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힘들다고 말하면 "그래도 너 돈 많이 벌잖아. 버텨봐"라는 말 밖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쉽게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영상 편집을 배우고 시작했겠지만, 배웠다고 하더라도 처음 10분짜리 제대로 된 영상 하나 올리려고 하면 최소 3일은 꼬박 써야 한다(길게는 일주일 걸려도 제대로 된 영상이 안나온다). 촬영분을 컷편집만 한 영상은 편집 시간이 줄지만 촬영 시간하는데 시간이 든다. 그래도 구독자, 조회수만 나오면 된다는 심정으로 영상을 올리지만, 대부분 영상 조회수는 100을 넘지 않는다. 100이면 다행이고 10도 넘기 힘들다. 통계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경험상 이 단계에서 80~90%는 그만 둔다. 영상 5개를 넘게 올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걸 극복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 5개를 넘게 극복하더라도 수익화하는데 시간은 꽤 많은 시간이 든다. 알고리즘을 제대로 활용하거나, 바이럴이 되지 않는다면 최소 6개월~1년은 수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 문제는 자녀들의 기회비용이다.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만 수익만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1년 동안 수익이 0일 수도 있다. 학업만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사회 시스템상 10대들의 노력을 학업 이 외에 측정할 도구가 없다. 그들의 1년은 우리의 1년과 다를 수 있다.
이 외에도 어느 정도 구독자를 올렸음에도 늘어나지 않는 수익에 대한 고민, 이로 인해 유튜브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편집자를 써야하지만 적자가 되는 신기한 현상, 갑자기 날라오는 세무 문제, 유튜브만 바라보고 살아왔지만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힘들어지는 상황 등을 봐왔다. 직업 유튜버에게 희망도 있지만 절망도 있는 시장임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시작점에서 중요하다. 시작을 하더라도 알고 시작해야 무너지지 않는다.
어느 날 100만 유튜버였던 친구가 나에게 전화했던 내용이 기억난다. "오빠, 나 이렇게 살꺼면 남들처럼 학교다니고 할 껄 그랬나봐"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 친구는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분명 희망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처럼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럼에도 하고 싶다면 꼭 마음을 다잡고 버티라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테니까.
그래서 결론은?
위에서 말한 걸 나만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성공을 비춰주지만 실패는 항상 공존한다는 것을 부모님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성공만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부모님 입장에서 무턱대고 안된다고 하기에는 아이의 간절해보이는 눈빛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를 찾아오셨을 것이다. 어려운 발걸음을 해준 부모님들께 나는 답을 드려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결국 나는 가능성을 말할 수는 없다. 내 영역이 아니다. 20대 친구가 나에게 프로듀싱을 맡기고 24시간을 쓰겠다면 모르겠지만, 10대 친구가 학업을 포기하고 나에게 시간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저 어려움을 알고도 직업 유튜버로 성공하고 싶어?"라는 질문과 "너의 10대는 소중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취미로 해볼 생각은 없어?"이다. 그리고 2가지 질문의 답은 같다.
만약 그럼에도 직업 유튜버로 성공하고 싶다면, 학교부터 졸업하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 듯이 미국에서는 스포츠 선수들도 시험을 보고 정상적인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시킨다. 한국에서 엘리트 선수 활동을 해 본 나에게 가장 후회되는 것은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다. 내 또래 친구들이 모두 아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학교 생활은 다시 해볼 수 없다. 그 때만 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자녀가 가질 수 있는 그 권리를 충분히 누려야 한다. 직업 때문에 포기할 성격의 것들이 아니다. 아이돌이야 10대부터 연습을 해야 능력을 갖추고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지만, 유튜버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 만족스러운 학교 생활을 하면서 천천히 고민하고 조금씩 행동하면 될 일이다. 스타트업씬에서 말하는 "린하게"를 적용하는 것이다. 리스크를 줄이고 시작해서 성공의 씨앗이 보이면 그 때 뛰어들도 된다. 하기도 어려운 콘텐츠를 찾지 말고, 자녀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 중에 만들고 싶은 것들을 하나 씩 영상으로 만들면서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시간도 절약되지만 유튜브를 하는 것도 재미있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