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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림 Apr 14. 2020

차 이웃은 뭔가 다르다

느슨해서 편안한 관계

자랑은 아니지만 고백하자면, 저는 인간관계가 무척이나 협소한 편입니다.

각종 단체생활에서 언제나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했지만 본디 타고나길 내향적이라 '친한 친구'의 범위가 좀처럼 넓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떨어져 지낸 지 오래된 유년기, 청소년기 친구들과 대화할 때 점점 화젯거리가 부족해지는 것도 요즘 종종 하는 고민 중 하나입니다. 제가 타 지역으로 대학을 진학하며 생활 기반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바람에 마음은 잘 맞아도 공유하는 일상이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궁색한 변명을 섞어가며 구구절절 말했지만, 결론은 대인관계 유지가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던 차에 최근 '느슨한 연대(weak ties)'가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재작년 붐을 일으킨 『90년생이 온다』(임홍택 저)의 주역,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의 관계론으로 주목을 받나 보더라고요.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타인과 관계를 이룰 때 장려하던 방식은 "우리가 남이가!" 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혈연을 강조하던 가족관부터 시작해서, 친구들끼리 온라인에서 '일촌'을 맺었고, 심지어 직장 동료들끼리도 걸쭉하게 술 한 잔 걸치고 형님아우 하며 어깨동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가요.





이와 반대로 밀레니얼 세대가 추구하는 '느슨한 연대' 방식의 인간관계는 꽤나 다릅니다. 비혈연 대안 가족의 등장, SNS를 통해 '팔로우'로 이어지는 비대면 관계, 수평적 조직문화 추구 등 예전이라면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니라며 부정당하던 양상들입니다. 이러한 관계의 바탕에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던 도중 공통의 목적이 있거나 각자의 입맛에 부합하면 결합하고 아니면 해산하는 식으로 지내겠다는 마인드가 있습니다. 즉 결속 자체가 목표가 되던 과거의 행태와는 대척점에 있는 관계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새로운 세대와 시대가 추구하는 바가 달라지고 보니, 저는 시종일관 같은 방식으로 지내왔는데 전에는 친구 적은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다가 갑자기 느슨한 연대를 일찍이 실천하고 있던 트렌디한 사람이 되어버렸지 뭐예요.






사실 저에게는 진짜 느슨한 연대로 이루어지던 관계망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차 이웃들'입니다.


약 5년 전 차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비슷한 연배의 차 친구들 몇을 알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① 차를 마시고 ② 제 나이 또래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교류를 시작한 시점도 각기 다른데다가, 성격이나 생활 패턴도 제각각인 듯합니다. 왜 갑자기 확신이 없어졌냐면, 하는 일이나 사는 곳 또는 주로 뭘 하며 일상을 보내는지 등등 일반적으로 관계를 트기 위해 아이스 브레이킹 용으로 사용되는 그 모든 정보들이 없거든요. 나잇대도 추정에 가까워서 사실 아직도 대부분은 정확한 나이를 모릅니다.

이런 정보 부족은 놀랍게도 이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SNS에 올리는 하루하루의 찻자리를 지켜보며 상대의 취향을 눈치채고, 덧붙인 사담을 읽으며 근황이나 상태를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가끔 안부를 물으며 잠시 대화를 주고받고, 새 차가 생겼는데 한번 맛보라며 기꺼이 보냅니다. 보통은 이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다, 때로는 함께 찻집에서 마주 보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즐거운 하루를 보낸 후 각자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지요.



정말 신기하게도 차 이웃들과의 관계는 부담이 없습니다.

서로에게 '함께 차 마시는 사람'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 속의 자신이 배제되고 인성과 성향을 가진 오롯한 개인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연의 나로만 존재할 수 있는 관계가 우리에게 얼마나 되던가요. 오히려 서로 어디서 뭘 하며 지내는지 모르다 보니, 사회적 페르소나에서 벗어나 좋을 때와 나쁠 때를 마음껏 티 낼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교류의 깊이가 얕다고 해서 무신경하다거나 무성의한 것으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이고, 이번은 그런 경우일 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어쩐지 '다우茶友'라는 말보다는 '차 이웃'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각자의 생활 방식은 달라도 마주치면 짧게 인사하듯 안부를 전하고 좋은 음식 좋은 일이 있으면 주고받는 관계, 바로 이웃이지요.




차를 앞에 두고 나의 오늘과 너의 오늘로만 마주하는 사람들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공공연하게 장려하고 있습니다. 전염성이 크다 보니 각종 모임이나 행사의 참석을 지양하고 지역사회를 먹여 살리는 꽃놀이며 축제도 전면 취소되는 상황이고 말이죠. 말만 '사회적' 거리두기이지 그 내용을 살펴보면 '물리적' 거리두기일 뿐이라는 걸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매번 만나서 끈끈한 정을 다지던 한민족은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진정되면 만나서 같이 밥 한번 먹자'며 연락을 주고받는 것 외에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심심함과 외로움을 호소하면서 믹스커피나 계란 따위를 수백 수천 번씩 휘저으며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유행이 되었을까요.


지난 3월 16일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코로나19 장기전을 대비하며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염병이 종식되어도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다들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에서 재택근무를 도입하고 시행하며 새로운 직장 문화를 만들고 있듯이, 만남 심지어는 외출조차 힘들어지는 시국에 사회적 관계 역시 어떻게 비대면으로 친분과 교류를 지속할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시국의 혼란을 틈타 차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며 영업하려는 속셈이 아닙니다. 다만 이미 느슨한 연대가 보통의 관계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문화가 존재하고 그게 얼마나 편안한 교류를 이어나가게 하는지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 차 한잔 마시며 새로운 이웃을 사귀어 보시면 어떤가요? 거창한 자기소개가 없어도 당신이 마시는 그 한잔의 차만으로 요즘 다인들은 은은한 환영인사를 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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