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글방 수강생 서지의 글
자유로운 여성들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기위로용 입니다. 자유롭고 싶고 조금 더 쿨하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특히 상대방의 피드백에 너무 떨리는 나를 봤을 때 그렇습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사사키 아타루는 질 들뢰즈를 인용하며 명령으로써 정보의 위험성을 설파합니다.
질 들뢰즈의 강력한 말이 있습니다.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라는. (...) 다들 명령을 듣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언제나 긴장한 채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 멋지네요.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믿을 수 있을테니까요. (22p)
처음에는 클럽하우스가 생각났습니다. Fear of missing out 전략이라고 하죠, 누가 어떤 세션을 연다는 얘기가 푸시로 올때마다 누르라는 명령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피드백을 생각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듣는 말. 더 경청하는 마음으로, 더 수용하는 마음으로 나의 발전을 위해 열어두었던 평가의 말이 종종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라’, 고 명령하는 타인의 생각에 관한 정보들을 - 그것이 얼마나 사실에 가깝고 유용한지를 떠나 - 거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를테면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있습니다. 아르헤리치를 처음 접하신다면, 도이치 그라모폰사에서 발매한 Début Recital 에 수록된 Toccata, Op. 11을 들어주세요. 아르헤리치는 아르헨티나의 천재적인 여성 피아니스트이자, 자유롭고 친절한 사람입니다. 마르타는 자신이 원할 때 피아노를 치고 원하지 않을 때는 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다른 일도 그렇게 대합니다. 돈에 관한 개념은 아예 없어서 상금으로 받은 돈을 피아노 위에 놓고 그냥 나오거나 아무에게나 돈을 빌려줍니다. 자신의 콘서트를 취소하는 일도 부지기수라서, 콘서트에 올라가기 직전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정말 멋지지만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았습니다.
자유롭기 위해 유능해지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일하는 마음》을 쓰고 현재 옐로우독 대표로 일하고 있는 제현주입니다. 그는 맥킨지와 사모펀드에서 투자운용전문가로 일하다가 직장을 떠나 자유롭게 일하기를 택했습니다.
직장에 속하지 않은 채로 일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이렇게 선택의 대상이 많아지면, 자신의 선호와 우선순위에 대해 훨씬 촘촘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런 기회들 덕에 저는 나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몇가지를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있었고, 그것들만 충족된다면 직장 안이냐 밖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직장 밖의 삶이더 이상 두렵지 않기 때문에 직장 안에서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프롤로그 - 9p)
자유로울만큼 유능하다는 컨셉은 매력적입니다. 어제는 지역기반 커뮤니티 창업자와 밥을 먹으며 창업의 일하기와 직장에서 일하기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답했습니다. 제현주의 《일하는 마음》에서도 비슷한 말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회사 밖에서 일할 때의 기술과 직장인으로 일할 때의 기술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놓은 답은 이랬다. “저는 그 둘이 가능하면 다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 납득할 수 있는 일을, 직장 밖에 있었더라도 선택했을 법한 일을 하려고, 주어진 일이니까 그냥 하지않으려고 애를 쓴다. (143p)
저는 이렇게 대담한 의도로 대답한건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이라 사수의 도움을 마냥 바랄 수 없으니 혼자 배우며 일하는 건 똑같다는 말이었죠. 제현주 작가와 같은 의도로 말할 수 있게 되려면 자신의 선호와 우선순위에 맞지 않는 일(혹은 목적)의 정보를 듣더라도 그 명령을 솎아내어 거절할 수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니어이고, 조무래기입니다. 솔직히 그렇게 행동하기 후달립니다. 멀리는 제현주 작가의 방향성을 따라가고 싶지만, 당장 후달리는 마음도 잠재우고 싶습니다. 저는 스스로 위로할 때 내 상황을 나보다 더 정확히 묘사한 문장을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후달린다’는 말보다 더 세련되고 정확한 말을 찾아 캐롤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었습니다. 캐롤라인 냅은 에세이 작가입니다.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동시에 술 중독, 섭식장애, 개에 대한 애착을 솔직하게 쓴 여성이기도 합니다. 마흔 둘에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캐롤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에서 공원에서 비공식적으로 모이는 “개 모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타인과의 접촉이 이처럼 단순하고 편안한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는 - 일터, 사교 모임, 가정에서 - 만남이 날카로운 판단, 불안의 기색, 퍼뜩 떠오르는 자의식으로 점철될 수 있다. (...) 이 모임의 사람들은 내가 책을 썼는지 말았는지, 무슨 책을 썼는지, 책이 서점에서 잘 팔리는지 따위를 두고 법석을 피우지 않는다. 내 책이나 책의 소재가 된 사적인 역사를 두고 판단하려 드는 사람도 없다. 내 과거는 그들에게 무관하다. 여기에는 놀라운 자유가 있다. (이런 사교의 기쁨 - 114p)
날카로운 판단, 불안의 기색, 퍼뜩 떠오르는 자의식은 앞서 말했던 거절하고 싶은 타인(혹은 내 안의 타인)의 명령입니다.
끊임없이 시험을 치르듯이, 만성적인 수행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나는 뛰어나야 해, 통찰력과 재치를 발산해야 해, 정답을 맞혀야 해, 완벽하고 착하고 모범적이어야 해. 나는 일에서 그렇다. 그래서 내 업무에 대해서 주기적으로(매주) 평가를 받는 직업에 투신했다. (그냥 보통의 삶 - 288p)
끊임없이 시험을 치르는 것 같은 만성적인 수행 불안, 이게 바로 제가 말하고 싶었던 ‘후달림’입니다. 역시 내가 겪은 문제는 이미 앞선 누군가가 겪어본 적 있군요. 냅은 이런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파악한 원인까지 통찰력 있게 밝혀냅니다.
내 경우에 이 공허함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 만족스럽거나 안정적이라고 느끼기 위해서, 나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 그리고 나는 외로움을 앞질러 달아나는 데 급급하여, 이 질문들에 답할 기회를 회피해왔다. (외로움에 관하여 - 186p)
타인의 평가라는 명령을 거절하고 ‘나의 안정’과 ‘나의 편안함’ 을 생각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살았던 캐롤라인 냅의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명랑한 은둔자》를 옮긴 김명남 번역가는 냅에 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냅은 가볍고 진지하다. 웃기고 슬프다. 시작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결말은 어이없이 관대하다. 자의식이 강하지만, 자기 연민이나 자아 비대는 없다. 그리고 늘 글 쓰는 자신에게 정직하다. (...) 냅의 글은 늘 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 느닷없이 닥친 상실이나 깨달음을 수용하려고 애쓴 이야기였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조금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점점 더 편안한 (더 자유로고, 더 즐겁고, 더 자신다운)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증언하는 글이었다.
(...)
이렇게 생각하니, 냅이 일찍 세상을 뜬 것이 더욱 더 아쉽다. (...) 살아 있었다면 올해 만 60세였을 냅은 40대에도 50대에도 좋은 글을 썼을 것이다. 중노년 여성의 삶을 누구보다 솔직하게 들려줬을 것이다. 냅이 만약 폐암에서 살아남았다면, 마지막까지 끊지 못한 최후의 중독이었던 담배마저 끊고 그 이야기를 또 책으로 썼을지 모른다. (...) 나는 그 글들이 필요하다. (옮긴이의 말 - 9p)
자유로운 여성들과 그들의 삶에 관한 글이 주기적으로 필요합니다. 다행히 제 출근길은 독서하기 알맞습니다.
작가 서지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로 일합니다. 일하는 자아와 글쓰는 자아를 꾸준히 재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