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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Mar 11. 2022

대통령님께

하마글방 수강생 발가락의 글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저는 문광초등학교 6학년 금성반 신파랑입니다. 


학교에서 대통령님께 보내는 질문 하나씩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았는데요.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차 라리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10개를 해오라고 하셨으면, 좋아하는 가수도 여쭤보고 싶고, 음식 도 여쭤보고 그냥 다 질문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한 가지 고른 질문은 이거예요. 대통령님, 대통령님도 매일 저녁 그날 입은 속옷을 스스로 빨래하고 건조대에 얹어놓으시나요?


저는 아니에요. 그렇게 매일 속옷을 빨래하는 건 우리 엄마 이야기예요. 엄마는 매일 저녁 그날 입은 속옷을 깨끗이 손으로 빨아서 화장실 건조대에 말려둬요. 저는 베란다에 놓인 빨래통에 제 몸에 걸쳤 던 것을 몽땅 넣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으셔서 궁금했어요. 어느 날은 궁금해서 엄마께 여쭤봤어요. 엄마는 속옷은 몸의 중요한 부위에 닿는 거라 매일매일 깔끔하게 입어야 하는 거니까, 저녁에 씻는 김에 휘리릭- 빠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도 든다면서요. 속옷을 빠는 게 왜 하루를 마무리하는 걸까요? 


요즘 저는 친구들과 예전에 했던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빠졌어요. 어떤 오래된 드라마는 제가 태어나 기도 전에 만들어진 거라 촌스럽고 웃기는 대사가 많은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주변에 언니 오빠나, 교회 청년부 선생님들한테 아는 체를 하면 모두 화들짝 놀라면서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돼요. 그게 왠 지 좋아요. 어깨도 으쓱해지고, 제가 풍부해진 느낌이에요. 최근에 본 건 그나마 최신 건데, 라는 드라마에요. 가수 아이유가 나오는 드라마인데, 아이유 아시죠?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재밌었던 게, 거기서도 어떤 아줌마가 속옷 빨래를 매일 하는 거예요. 어느 날은 술에 취해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빨래를 하다 세면대에 박아서 쌍코피가 흘러요. 그런데도 계속 빨래를 해요. 되게 웃겼 어요.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되진 않아요. 졸려서 비틀거리는 와중에 왜 빨래를 할까요? 코피가 나 는 데도요! 우리 엄마였으면 제 티셔츠에 묻은 코피를 보고, 빨래하려다 빨랫감만 만드네.라고 하셨 을지도 몰라요. 저는 엄마가 호통칠 때보다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실 때가 왠지 얼굴이 더 벌게져요. 아무튼, 그 드라마의 아줌마는 항상 왠지 슬퍼 보였는데 매일매일 어떤 상태여도, 심지어 술을 너무 마신 그런 날에도 그날 입은 속옷을 빨았으면 자기는 괜찮은 거래요. 빨래하면서 계속 자 기는 아직 괜찮다고 말해요. 뭐가 괜찮다는 걸까요? 속옷을 빨면 아줌마의 그 어떤 슬픔이 사라지기 라도 하는 걸까요? 


얼마 전에는 아빠랑 식당에 선지해장국을 먹으러 갔어요. 선지 해장국은 처음인데, 제 친구들은 선지 해장국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면 미간을 찌푸려요.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저는 그런 거에 괜한 도전 의식이 있어요. 아, 더 솔직히는 아빠가 그거 먹으면 키 큰다고 해서 갔어요. 생각보다 괜찮던데요. 식당 TV에서 어제 했던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라는 것에 대한 뉴스가 나왔어요. 그게 나오니까 사장 님이 갑자기 볼륨을 올리고 다른 주변에 어른들도 한 손에 국밥에 담근 수저 끝을 쥔 채로 다들 TV 를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왜 자기들끼리 자꾸 누가 더 까맣냐고 싸우는지 모르겠네. 저게 토론이냐.” 

“자기가 더러우니까 남도 더럽다 해야 덜 더럽게 보이나 보지. 집 가서 거울 볼 때 안 창피한가? 나 는 학교에서 모의 토론 때 페이스 망쳐서 저딴 토론하면 이불킥 할 것 같은데.” 

옆 테이블에 앉은 언니들의 이야기를 몰래 듣던 건 저만이 아니었는지, 아빠가 제게 말씀하셨어요. 

“파랑아, 실수는 누구나 해. 그렇지만 실수를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그래서 그다음 날에 한 뼘 더 나아질 마음이 있는가야.”  


아빠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때 저는 내내 혼자 생각에 빠져 있느라 아빠 말은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아요. 언니들의 대화가 저를 궁금하게 했기 때문이에요. 자기의 더러움이 왜 남의 더러움을 지적하 며 나아진다고 생각할까요? 그러면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사람은 그 사람을 깎아내리고 싶은 것이 아 니라 사실은 자기를 추켜세우고 싶은 걸까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사람들, 이미 대통령인 사람, 대통령이었던 사람들도 우리 엄마처럼 매일 속옷 빨래를 할까요? 속옷을 빨래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까요? 그러다 이불킥도 할까요? 


빨래 질문을 한 뒤 며칠이 지나고 저랑 간식을 먹던 엄마는 뭔가 잊어버린 게 생각난 사람처럼 말씀 하셨어요. 

“저번에 물어본 거 있잖아. 어쩌면 엄마가 속옷 빨래를 하는 건 하루 동안 보이지 않게 쌓인 내 더 러움을 깨끗하게 만드는 거니까, 빨래하며 매일매일을 되돌아보고 훑어보는 거야. 일기장 같지 않니” 아무래도 냄새가 났어요. 제 질문을 받은 그 후로 좀 뒤끝 있게 생각한 냄새요. 그때 했던 대답이 엄 마는 아무래도 스스로 좀 아쉽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근데 제 생각엔 그래서 대답이 조금 더 느끼 해진 것 같아요. 엄마랑 잘 어울리긴 해요. 엄마는 매일 일기를 쓰시는데 얼마 전에 그 일기장을 제 가 봐버렸거든요. 저도 좀 부끄럽긴 해요. 제 일기는 꽁꽁 감쳐두고 그래도 혹시 누가 볼까 봐 일기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모두 초성으로 써요. 제 일기는 그렇게 숨기면서 다른 사람의 일기는 왜 이렇 게 궁금한지. 몰래 본 엄마의 일기장에서 저는 옛날 드라마를 봤을 때 느낌을 받았어요. 어딘가 느끼 하고 감성이 빵빵하지만, 하지만 또 그래서 노래 같고 동시 같기도 했어요. 어쨌거나 엄마의 보태는 말을 통해 이제 속옷을 빠는 일은 더 멋져졌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매일매일 자신의 속옷을 빨래하시나요?



작가 발가락

발가락의 존재를 발가락이 아프니까 알았다. 글도 그런 것 같아 계속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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