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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May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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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글방 수강생 우레의 글

기다린다. 10분, 20분, 40분…… 1시간. 노트북에는 메신저 어플 ‘라인’과 화면 녹화 프로그램 ‘오캠’이 열려있고, 책상에는 초시계와 핸드폰, 미리 써놓은 대본이 놓여있다. 그리고 마침내 1시간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던 노트북에 라인으로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초고속으로 오캠 녹화 버튼을 누르고, 영상통화를 받는다. 동시에 핸드폰으로는 음성 녹음을 누르고, 초시계 시작 버튼을 누를 준비를 하고 있다. 연결된 영상통화 화면에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쪽지가 나오더니 상대편이 카메라를 껐다. 또 기다린다. 1분, 2분. 곧 켜지겠지. 3분, 4분. 4분 동안 또다시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본 채 엄지 손가락은 초시계 버튼에 닿을 듯 말 듯 하고 있다. 마침내, 드디어 마침내 상대편 카메라가 켜진다. 그리고 초시계의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안녕, 오랜만이에요.”
화면 속의 그녀가 웃으며 인사한다. 오랫동안 못 봐서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떨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제 미리 쓴 대본대로, 연습한 대로 말하면 된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번에 노래 많이 들려줘서 고마워요.”
앗, 틀렸다. 생일 축하를 먼저 하고, 노래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괜찮다. 당황하지 말자.



“생일 축하해요. 생일 편지 쓰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내 편지와 선물을 기억해줄까 싶은 마음으로 생일 편지 이야기를 꺼내본다.
“고마워요. 축하해줘서 정말 행복한 생일 보냈어요.”


그렇게 1시간 4분을 기다리고, 4분 동안 그녀를 봤다. 영상통화 순서가 앞번호여서 다행인 건지, 예정되었던 3분보다 1분을 더 봐서 다행인 건지, 화면녹화가 제대로 되어서 다행인 건지, 그렇게 스스로 이번에는 망하지 않았다고 다독여준다.

1년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TV에 나오는 그녀를 좋아하였다. 많은 연예인을 좋아했지만 직접 대화를 하고, 선물과 편지를 준 사람은 처음이다. 그동안 여덟 번의 영상통화를 하고, 딱 한 번 실제로 보았다. 화면 속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마주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실제로 보니까 훨씬 어른 같아요.”


라고 놀라며 말하였다. 그녀는 이미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내 얼굴을 알아보았고, 내가 준 선물들도 기억할 만큼 팬을 챙긴다. 또 그녀는 팬에게 받은 선물을 사진 속에 은근히 담아 그 사람이 발견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선물한 책, 카메라, 그림도 그렇게 빠짐없이 그녀의 sns 사진 속에 채워졌다.


지난 선물들이 그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선물과 함께 있던 내 편지를 그녀가 읽었으며, 앞으로 내가 더 좋은 선물을 주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새로운 선물과 편지를 보내기 전에 항상 다짐하는 것이 있다.  

1. 선물 인증을 기다리지 말자.
2. 편지에 나의 이름을 드러내지 말자.


연예인을 더 오래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내 선물과 편지, 그리고 나의 이름을 기억하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 영상통화에서 내가 1년 뒤의 당신에게 편지를 썼다고 하니,


“알아요, 생일 편지에 그 이야기 써줬잖아요.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내심 그녀가 내 편지를 읽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동시에 그럼 내가 보낸 선물도 기억할까 하는 기대심이 부풀어오른다. 그런 생각이 들면 물어보면 된다. 내가 처음으로 선물을 보내고 잘 받았냐고 물어봤을 때처럼 이번에도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너무 잘 받았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선물 이야기를 꺼내고, 그것이 바로 내가 보낸 선물임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편지와 선물 상자에 내 이름도 적지 않았으면서, 아홉 번 보면서 내 이름 한 번 안 밝혔으면서, 겨우 1년 7개월 좋아했으면서 ‘나’를 알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를 밝히지 않는 것이 내가 상처 입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라 생각했다. 더 오래 좋아하고 싶으니까, 더 기대하지 않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녀는 다른 팬들이 올린 영상 속에서 그 팬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선물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녀는 자신을 밝히는 팬을 모두 기억하고 알아본다.


1년 7개월이 2년이 되고, 3년이 되었을 때 여전히 그녀가 내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상처 입지 않을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그녀를 좋아하게 된 팬의 이름은 알고, 나의 이름은 모른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방적인 사랑이니 그녀는 나의 마음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단지 사랑을 주는 것이 너무 좋으니까,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녀를 더 오래 좋아하고 싶어졌다. 한 연예인을 진득하게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그녀를 좋아한 이후 내 마음이 변할까봐 언제나 불안해했다. 내가 스무 살 때 사랑했던 사람을 닮아서 이토록 좋아하는 거라 하기에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길다. 닮은 사람과는 별개로 그녀를 본 순간 나는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를 알아갈수록 나의 눈은 정확하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이제 나는 자기pr을 해야할 차례다. 초등학생 때 소원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졸업하기’였던 걸 떠올려 보면, 현대 사회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운 좋게 잘 생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이 덕질에서 나를 보이며 생존할 거고,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할 거다. 중간에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나를 드러냈는데도 알아주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지금 내 마음에 집중하여 그녀가 이 순간 넘쳐나는 이 사랑을 가득 받길 바란다. 당신은 더 많은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니까.


From. 우레


작가 우레

나의 상상을 담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잠이 들면 신비한 꿈을 꾸고, 깨어나면 동화 작가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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