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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Apr 11. 2023

모든 이야기의 시작

하마글방 수강생 202의 글

으레 모든 이야기가 시작하는 문장처럼. 나의 이야기도 이렇게 진부하게 시작되어서 유감이다.

왼쪽 엉덩이가 가출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볼기 따위겠지만. 그래도 엉덩이가 친숙한 표현이니 엉덩이라고 하자.

지금 나는 짝궁둥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나마 내 왼쪽 엉덩이 너비와 모양이 비슷한 말랑한 쿠션 4개를 겹쳐 오른쪽 엉덩이 높이와 비슷하게 맞춰 앉아있다.

엉덩이는 말랑하다고 생각하면 딱딱하고, 말캉거린다고 생각하면 뼈가 만져지는, 그런 부분이라 한쪽 엉덩이 크기만한 쿠션 하나 정도면 대충 오른쪽 엉덩이와 높이가 비슷하겠지, 생각하고 앉았다가, 덜컹하고 왼쪽으로 나자빠졌다. 엉덩이는 힘을 빼고 주무르면 말캉하지만, 앉으면 엉덩이가 허리 쪽으로 솟고, 궁둥이가 의자에 닿는 근육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엉덩이 주사도 근육주사였지. 몇 번의 쿠션 착오 끝에 그나마 맞는 쿠션을 4개 배송받아 겨우 눌러 앉아있다.


엉덩이가 가출해서 사라지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까? 정형외과? 피부과? 성형외과? 아니면 모든 걸 다 봐주는 가정의학과? 아니면 항문하고 가까우니까 항문외과?

왼쪽 엉덩이가 있던 부분에 쿠션 4개를 쌓아 겨우 평상시처럼 앉은 지금에서야 어느 병원에 가야할까 고민하고 있다.

왜 아직도 병원에 왜 가지 않았느냐고?

엉덩이 한쪽? 한 짝? 엉덩이의 한 파트를 의학적으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왼쪽 엉덩이가 가출했다는 사실을 어디에다가 말하기도 참으로 애매하고 도대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다. 사실 이 상황이 너무 말도 안 돼서 꿈인가 싶어서 안 가는 것도 있다. 이게 일주일짜리 꿈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응급실에 가면 되지 않냐고?

그러기에는 피가 한 방울도 나지 않았고, 엉덩이가 가출했을 때 까무라치지도 않아서, 태초부터 왼쪽 엉덩이가 없던 것과 똑같이 텅텅 비어있는 나의 지갑이 응급실 비용을 추가로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응급실은 선택지에 없었다. 일단 피도 나지 않고 까무라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소설에 나온  ‘그림자를 악마에게 판 사람’ 마냥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가리고 급히 조퇴해서 집으로 왔다.


왼쪽 엉덩이와 함께한 마지막 날은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슬프고도 우아하게 톡, 떨어져 똥색으로 짓이겨질 목련이나 실컷 보면서 땡땡이 치며 담배나 태울 요량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목련나무 아래 대리석 화단에는 하얀 목련 봉우리가 통째로 떨어져 있거나, 조금 떨어진 곳에 심어진 별목련의 꽃잎이 날아오기도 하는, 주변 빌딩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꼰대와 남성 또는 꼰대남성을 피해 숨어서 담배를 태우는 화단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나와 왼쪽 엉덩이의 마지막 추억.. 아니 기억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원래 그 날은 딱히 목련을 보면서 땡땡이 칠 생각은 없었다. 최근 나의 스트레스 1순위로 등극한 ‘씹던 껌’ 때문이었다. 영화 ‘도둑들’의 김해숙 언니가 아니고, 정말 누군가의 입에서 단물까지 쪽 빠져 잇자국까지 남아있는 ‘씹던 껌’이다. 분명 껌은 살때도, 버릴 때도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하는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요 몇 주간 포장지 없이 잇자국이 진하게 남아 굳어가는 중인 하얀색 껌 덩어리를 사무실에서 목격하고 있다.

엉덩이가 가출한 그 날은 부장놈에게 가제본한 중간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기어코 그 ―빌어먹을― 껌이 뒷표지에 붙은 상태로 보고되어 욕을 한바가지 먹었다. 도대체 사무실에 어떤 이상한 인간이 씹던 껌을 아무데나 뱉어대는걸까. 그리고 그 씹던 껌은 어떻게 결재서류판에 기어들어가 보고서 뒷표지까지 가서 붙은걸까?


부장의 꼰대소리에 비상 땡땡이 겸 담배를 태우려고 목련나무 밑 검은색 대리석 화단으로 향했다. 무심코 검은색과 대비되게 떨어진 하얀색 목련 꽃잎 위에 앉았는데, 아뿔싸. 이건 목련이 아니라 누가 씹다 뱉은 하얀색 껌이었다.

아니 씨발.

나는 턱을 치켜들며 눈알까지 위로 향하게 하고 크게 한숨을 몰아 쉬었다. 무슨 껌하고 전생에 원수지간이었나, 사무실에서도 사무실 밖에서도 씹던 껌과 싸워야 하는걸까. 그와중에 내 엉덩이에 붙은게 껌이기는 한 건지, 블루택*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왼쪽 엉덩이에 철썩,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블루택Blutack: 고무찰흙처럼 생겨서 조물조물한 뒤 고정할 때 사용하는 점착제. 블루택이지만 하얀색 버전인 블루택 화이트도 있다.


에이씨, 하면서 일어나는 순간,

왼쪽 엉덩이가,

마치 치과의사가 사랑니 발치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하고 빠졌다.

정말 사랑니가 온전한 형태로

                                    

                                 빠지는 것처럼 개운하게,

왼쪽 엉덩이가 껌 같은 것에 붙어 떨어져 나갔다.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원래부터 내 몸과 분리된 있는 개체 였던 것 마냥 깔끔하게 한 덩어리로 떨어져나온 왼쪽 엉덩이가

“엉덩이는 하나인가요, 둘인가요.”

하고 나에게 물어왔다. 도대체 왼쪽 엉덩이가 어떻게 나에게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질문을 하려면 생각이라는 걸 해야하는데 생각을 하려면 뇌라든지 그런 장기가 필요할 텐데 이게 엉덩이에 자체적으로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조금 하다가, 진짜 왼쪽 엉덩이가 육성으로 나에게 말을 한 건지 아니면 텔레파시처럼 나에게 전달을 한 것인지 헷갈리는구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동안 왼쪽 엉덩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불현듯 생각났다.


내가 다니던 병원의 주사실 침대는 언제나 출입문 오른편에 붙어있었고, 혹시 모를 엉덩이 노출 사고를 대비하여 항상 왼쪽 엉덩이만 내려 주사를 맞았다. 주사실 간호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호탕한 성격이라 내가 바지를 엉덩이 반쯤 걸친 채 주사 맞은 곳을 알코올 솜으로 비비고 있든지 말든지 주사실 문을 활짝, 아니 화들짝 열고 통행하던 터라 ‘전격 공개 나의 오른쪽 엉덩이!’가 우려되어 주사는 항상 왼쪽 엉덩이가 감내해야 했다.


몰래 방귀를 뀔 때도 그랬다. 이렇게 계속 쓰고 나니 왼쪽 엉덩이가 가출할 만한 것 같다. 몰방할 때 어느 엉덩이를 위로하나요? 라는 쓸데없고 TMI 난무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같긴 한데… 여튼 나는 몰방할 때 내 모든 무게를 왼쪽 엉덩이에 싣고, 오른쪽 엉덩이를 들어 푸슈-ㅅ 또는 보보봉, 하고 장내가스를 방출한다. 그렇다. 왼쪽 엉덩이는 마치 발레리나 또는 발레리노처럼 발끝 포인이 된 것처럼 내 몸과 내 무게를 온전히 홀로 지탱해왔다. 왼쪽 엉덩이는 평생을 그래왔다.


왼쪽 엉덩이의 질문에 나는 당연히 왼쪽과 오른쪽 별개로 움직이고, 걸을 때 흔들림이 다르니 당연히 둘이지. 라고 말하자마자 왼쪽 엉덩이는

“so long! Geronimo!”

를 외치고 누군가 밟아 짓이겨져 똥색이 된 목련을 징검다리처럼 통통 밟으며 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이때 뭐라고 외쳐야 했을까?


저기! 왼쪽 엉덩이 좀 잡아주세요? 제 엉덩이가 도망가고있어요?


꼭 이럴 때는 옆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도 없고, 길거리마저 한산해서 사람은커녕 낙엽 하나 굴러가는 법이 없다. 아무도 없는 빌딩을 통통 튀어가는 탄력 있는… 아니 탄성이던가... 뭐든 탱탱한 내 왼쪽 엉덩이는 잘만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그 자리에 엉덩이를 도둑맞은 것처럼 서 있었다.


왼쪽 엉덩이가 나의 세포를 가진 채 혼자 알아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가출해버린 누군가의 왼쪽 엉덩이가 되어 새로운 삶을 이어갈지, 가출해버린 왼쪽 엉덩이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짝궁둥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제발 씹던 껌은 종이나 휴지에 싸서 버리자.




작가 202

내가 가진 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편협한 시각과 다양한 것을 마음에 담아내지 못하는 부족한 공감 능력을 부끄럽게 여기며 또 하나의 페르소나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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