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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미상 May 29. 2023

삶과 유한함은 같은 빛깔이다.

이제는 끝이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선물로 꽃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며칠 후면 꽃은 시들해지니까, 시든 꽃의 모습을 보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꽃뿐만 아니라, 나는 끝이 있는 모든 것을 싫어했었다. 살뜰하게 키우던 건강하고 귀여운 강아지를 눈앞에 두고도 늘 이 강아지가 언제까지 나와 있어 줄지, 지레 겁먹고, 걱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막 대학생이 됐을 때는, 중고나라에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물건들을 잔뜩 산 적이 있다.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것들을 구매하면서라도 지나간 추억을 붙잡고 싶어 했었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모든 것들에는 끝이 있지만, 그걸 몰랐던 나는 그렇게라도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실은 그렇게라도 끝이 있음을 부정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모든 존재들은, 감정들은 언젠가 다 떠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먼 곳에 보내드려야 했을 때, 긴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단짝 강아지를 떠나보냈을 때,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미래의 불안함이 이윽고 모습을 감췄을 때, 고마운 사람들을 통해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매 순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슬픔도, 기쁨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흘러가는 시간들에, 세월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모든 것들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물론 사람인지라 여전히 행복하고 소중한 이 시간들이 조금만 더디게 가게 해달라고 바라고, 기대하지만 말이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다.


   영원한 것이 없음을 받아들인 덕분인지, 요즘은 현재를 살아간다. (나에게는 정말 큰 변화다. 나는 늘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어려워했다.) 더 이상 과거에 지금을 붙잡히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 이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 내 사진첩에는 지나가다 우연히 본 꽃들이 무수히 많다. 아마 다시 또 이 길을 지날 때 이 꽃들은 꺾여있거나, 시들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피어준 꽃들이 참 좋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이, 순간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삶과 유한함이 동색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연히 내게 찾아온 모든 것들을, 끝이 있는 모든 존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할  있다. 비록  깨달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은 시리도록 아팠지만,  귀한 깨달음이 요즘의 내가 현재를 살아가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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