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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Jan 04. 2022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우리의 별빛 같은 청춘,

-제주에서 만난 그녀와 함께한 여름밤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낸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특별하다.


푸름과 내가 그랬다. 그녀와 처음 만난 건 말레이시아 쿠칭이라는 작은 도시였다. 한참 승무원 준비를 하던 시절, 우리는 같은 승무원 학원을 다니고 있던 학원 동기였다는 사실을 그곳 면접장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매력적인 친구였다. 그때는 정말 우리는 뭐에 홀린 듯이 승무원이라는 목표 하나에 미쳐있던 시기였고, 같은 꿈을 가진 것만으로도 서로를 응원하는 애틋함들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승무원을 준비하던 시기는 저마다 외국 항공사들의 한국인 채용이 슬슬 닫혀가던 희망이 없던 시기였다. 그 당시 그녀는 동남아시아를 제 집 드나들 듯이 다니며 닥치는 대로 면접을 보던 당찬 친구였다. 나 역시도 유럽 면접투어를 다녀온 후 한국에서 그나마 가까운 동남아 면접들을 참여하고 있었고 면접 때 함께 숙소를 셰어 하며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면접이 끝나고도 다음 채용에 대비해 함께 스터디를 시작했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돼주었다. 그렇게 길고 지루한 싸움 끝에 푸름이는 당당하게 외국 모 항공사에 먼저 합격해 먼저 윙을 달게 되었다. 그녀의 고생은 내가 너무나 잘 알았기에 진심으로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내가 호주 워홀이라는 힘든 결정을 내렸을 때도 아무 이유 없이 내편을 들어줬고, 호주로 가는 도중 말레이시아를 경유한 그 짧은 시간에 트레이닝 중에 바쁜 틈을 내서 나를 만나러 와줬다. 그리고 몇 달 뒤, 호주에서 승무원 면접을 보기 위한 인비테이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제일 기뻐해 준 것도 그녀였다. 기꺼이 자기 집에서 재워주겠다며 나를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밤늦게까지 면접 대비 조언을 해주고, 꼭두새벽부터 메이크업을 도와주고 택시를 예약해준 것 역시 그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결코 최종면접에서 합격할 수 없었을 거다.     


그런 그녀와 함께 행복한 크루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꿈도 잠시, 푸름은 내가 트레이닝을 마치고 비행을 시작한 그달, 건강상의 문제로 퇴사를 결정했다. 비행을 더 하고 싶었지만 지금 비행을 계속하기엔 힘든 건강상태라는 그녀의 얘길 듣자마자 너무나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그녀가 얼마나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었는지 내가 더 잘 알았다. 하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이미 몸이 한계였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그녀는 이제는 좀 쉬고싶다고 했다. 가장 아쉬운건 나와 함께 비행을 하지 못한거 그거 하나뿐이라고 했다. 앞만보고 달려왔기에, 그녀에게 필요한건 일단 휴식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의 휴식 끝에 새로 구직활동을 시작하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외국계 기업 사무직으로 이직을 보란 듯이 해내는 그녀였다.


나는 푸름의 그런 단단한 멘탈이 대단했다. 나라면 퇴사한 시점에 바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갔을 텐데, 아마 그녀 나름대로는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신념이 있었겠지. 그렇게 1년 후 프리랜서 워커로서 전직에 성공하고 앞으로는 여러 나라에서 살아보며 디지털 노마드로서 살아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는 그녀는 진심으로 멋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팬데믹으로 인해 그녀의 계획은 바뀌어야 했고, 그녀가 선택한건 제주였다. 과감히 제주에 있는 집을 1년 치를 일시불로 결제했다는 그녀의 배포는 이미 보통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제주로 건너간 그녀의 삶이 어떨지 나는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버텨내야 하는 삶에 지친 나는 결국 제주에 있는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꼬박 1년이 지난 , 7월의 어느 지독하게 더운 여름날, 드디어 그녀를 만나러 갔다.     




서울의 지옥철을 잠시 생각하지 못한 나의 오산으로 나는 퇴근시간 지옥을 맛보며 밤 비행기에 겨우겨우 몸을 실었고, 제주에 도착한 건 9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그리고 그 늦은 시간, 밤 운전을 1시간 가까이해서 공항까지 나를 데리러 와 준 착하디 착한 그녀, 푸름이를 만날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차 한대가 내 앞에 섰고, 차 창문 너머로 밝게 웃으며 언니 오느라 고생했다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복스럽고 사랑스러운 얼굴의 푸름은 내가 지금까지 봐온 얼굴 중 가장 마음 편안해 보이고 맑았다. 대체 1년간의 제주생활이 너에게는 어땠길래 이렇게 사람이 바뀔 수가 있는 건지. 물론 그전에도 그녀는 항상 내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던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뭔가 제주에서 만난 푸름은 그 무언가를 초월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게 해녀학교에 다니는 언니들과 별이랑 반딧불이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해녀학교라는 게 있는 것도 신기했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놀랬지만 이건 분명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이 제주 땅에서 차가 없이 절대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녀학교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처음 보는 언니들과 함께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신나게 들으며 도착한 곳은 세상의 모든 빛과 소리가 숨을 죽인 곳이었다.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깜깜한 어둠이 무섭기보다는 신비스러웠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자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숲의 향기의 은은함이 함께 밀려오며 감각들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숲길을 걸어 들어가자 숨어있던 반딧불이들이 반짝-반짝-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자 내 눈으로 밤하늘의 별들이 잔뜩 쏟아져 내렸다. 황홀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북두칠성과 은하수를 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이 황홀경에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인파에 밀리고 밀려 숨조차 쉴 수 없었는데, 이곳은 고요하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말도 안 되게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내게 이 멋진 곳을 데려다준 그녀의 따뜻한 배려였던 걸 깨달았다. 고맙고 고마운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랬다. 우리의 칠흑 같았던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던 거다. 순수한 열정으로 반짝였던 그 청춘의 페이지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 때문에 주저앉지 않게 서로의 손을 잡아주던 그때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 꿈을 이룬 순간에도 이 순간을 위해 몇 번이고 까진 무릎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 서로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에겐 그리고 그 꿈이 아닐지라도,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만의 삶을 살아가며 힘들 때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기쁠 때는 누구보다 기뻐해 주는 그런 존재로 계속 나아갈 테니까.


나는 삶이 지치고 무너질 때 그날의 제주에서의 아름다운 여름밤을 기억할 거다. 몸이 떨어져 있다고 해서,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우정과 사랑의 힘은 단단하게 우리를 지탱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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