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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Apr 02. 2022

2. 다시, 상경 -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버텨내기

팬데믹으로 인한 고용불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

  첫 직장이었던 인천공항에서 퇴사한 후, 역마살이 이끄는 대로 영국 유학, 호주 워홀, 말레이시아에서 승무원으로 일한 시간을 지내고 나니 한국 나이로 어느새 서른셋이 돼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강제로 한국에 송환된 나는 부산에서의 꿈만 같던 무급휴가 3개월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생존하기 위한 레이스에 뛰어들어야 했다. 팬데믹이 끝나면 곧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직장은 코로나로 인해 경영위기로 이미 한차례 해고 바람이 불어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내 자리가 안전할 거라는 보장이 없어져서였다. 매일매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도,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에서 본 면접에서 갑작스럽게 채용되었고, 갑작스럽게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제일 사람 많고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 한복판에 있는 작은 중소기업의 사무직으로.  


예전엔 어렴풋이 그런 로망이 있었다.

30대 직장인이라면 뭔가 오피스룩에 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으며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고 빌딩 숲을 지나 사무실로 출근하는 도회적인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판타지.

하지만 실상은 출근을 위해 급하게 산 싸구려 구두에 아픈 발을 부여잡고 휘청휘청 걸으며 좀비 같은 출퇴근 인파에 치이고 치이며 겨우겨우 아무 카페에서나 커피 한잔을 사서, 담배연기 자욱한 골목을 지나, 구석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 출근도장을 찍고 노예같이 그날의 업무를 시작한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곳까지 온 건지 몇 번이고 후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근로계약서를 쓴 순간, 나는 월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일해야 하는 그저 그런 직장인이 되었다는 걸. 그 모두가 내가 다 선택한 것이었단 걸. 도비가 자유를 얻으려면 양말이 아니라 돈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한국에서 사무직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건 너무나 오랜만이라 아무리 적응력이 빠른 나조차도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 목적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비행을 다니던 내가 몇 시간째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몽땅 써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눈은 뻑뻑하고 어깨와 허리 안 쑤시는 곳이 없다. 그리고 야근문화. 옆에 앉은 사수는 칼퇴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점심시간도 쪼개서 일을 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사와 부장은 칼퇴하는 다른 팀원들을 고깝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비행을 마치고 마지막 디브리핑이 끝나면 사무장이고 부사무장이고 할 것 없이 총알같이 칼퇴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야근, 주말출근에 대한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고,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상사들에게 꼬박꼬박 문안인사 여쭈듯 찾아가 인사해야 하는 전형적인 수직적 상하관계의 회사 분위기. 요즘은 호칭 생략하고 이름+님으로 부르는 곳도 많다던데, 이 회사는 꼬박꼬박 상사의 직급을 부른다. 그게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는 보통의 회사라지만 비행할 때는 사무장에게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상이던 직장 분위기에 익숙했던 나는 정말이지 이곳에선 외계인이 된 것 만 같았다.  


 지금까지는 교대근무가 대부분인 직업이었어서 밤낮이 없는 근무환경이라 늘 저녁이 있는 삶을 동경해 왔는데, 퇴근하고 저녁 먹고 나면 사실상 거의 잠을 자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적어도 9시간 정도는 자야 하는 극 저녁형 인간으로서는 아침 출근은 정말 고역이다. 새벽에 일어나 비행 갈 때는 그렇게 쌍욕을 하며 출근 준비를 했는데, 매일매일 아침 출근하는 게 내겐 더 힘든 일같이 느껴진다.           


결혼이나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은 지금 내게는 아득함을 넘어 현실적 가능성의 확률을 따지게 된다. 아주 잠시 동안의 헤어짐 후 다시 재회한 남자 친구와의 연애는 이미 달콤함의 유통기한이 다했다. 나보다 이미 현실의 법칙에 순응하기 시작한 그와의 연애가 현실적이지 않을 수가. 하지만 나라고 왜 사랑에 빠져서 홀린 듯이 연애하고, 결혼을 꿈꿔 본 적이 없었을까, 하지만 현실은 나의 감성을 철저히 짓밟았고, 살아남아야 하고, 먹고살기 바쁜 이때에 결혼은 내게 사치스러운 망상이었다.      


30대의 주변 친구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아나가는 때, 항공계는 팬데믹이라는 상황 속에 가장 취약한 산업이었고, IMF 경제위기를 겪은 세대와는 또 다르게 맞부딪힌 이 엄청난 고용불안의 상황에 나는 살아남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것을 선택했다. 홀로 떠난 일본에서도, 영국에서도, 호주에서도, 말레이시아에서도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았고, 낯설고 차가운 이 서울에서도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퇴근길, 잠시지만 느릿느릿 져가는 해가 남긴 노을을 바라봤다. 참 속 시끄럽기 그지없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 풍경은 너무나 평온했다. 내일도 좀비 같은, 나와 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의 출근길을 힘든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겠지. 언젠가 이 버틴 순간들을 잘 해냈다며 대견해할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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