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처음 가는 길,
처음 만나는 사람,
첫 직장까지.
어떤 이들 '처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설렘이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처음'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먼저였다.
혼자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조금 무섭고 망설여졌지만 한 번은 꼭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내 마음속에는 가지 말아야 할 목록들만
하나둘 쌓여갔다.
처음 가는 곳이라 길을 헤맬지도 모른다.
왠지 컨디션이 안 좋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컨디션이 나빠질지도 모른다.
버스를 잘못 탈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수없이 돌아오고 있었다.
혼자라는 두려움.
처음이라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래서 문득, 내가 처음 두려움을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처음 두려움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는 강가에 있었다.
건너편에서는 오빠가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아홉 살 많은 오빠는 나보다 몸집도 커고 다리도 길었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가지 않았던 나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강에는 다리가 없었서 신발을 벗도 물살을 온몸으로 견디며 건너야 했다.
내가 건너기에 물살이 너무 세 보였다.
나는 무서움과 두려움 그 사이,
그 어디쯤 서 있었다.
오빠의 재촉이 계속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발을 물속에 내디뎠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 아래였지만 발끝에 닿는 물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다른 발도 천천히 물속에 넣었다.
차가운 물에 조금씩 몸이 익숙해지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강물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철벽 철벅...
강 중간쯤으로 갈수록 물살이 점점 더 세지는 것이 다리에 전해지는 감각으로 느껴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이제는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 강 가운데쯤에서 발을 디딘 돌이 미끄러워 그대로 넘어졌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있던 오빠가 놀라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아마 오빠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더 멀리 떠 내려갔을 것이다.
그때 알았다.
용기만으로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더 두터운 벽이 남았다.
나는 그날 이후 물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물만 보면 겁이 나서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러다 나는 다시 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평생 이 두려움을 안고 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초보 수영 강습반에서
나는 가장 진도가 느린 사람이었다.
긴 적응시간이 지나고, 처음으로 킥판을 잡고 자유형을 시도했지만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호흡이 문제인지, 자세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 그날의 두려움이 여전히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말에도 수영장을 찾았다.
혼자 넓은 물속에서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여전히 수영은 즐겁지 없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순간마다 작은 기쁨이 찾아왔다.
수영장을 한 바퀴 도는데도
다른 사람들보다 세 배는 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마음속 두려움을 가득 안고 출발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걱정과는 달리 몸은 가벼웠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교통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아 주었다.
세상은 위험하기보다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를 가로막았던 건 세상의 벽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 가방을 풀며 생각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사실은 이 여행 전의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생이라는 길에서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릴 때마다 이번 여행의 기억을 꺼내 보려고 한다.
'생각보다 괜찮을 거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