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그래서 따라 걷는다.

by 은하연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이었다.

가로등 불빛은 켜져 있었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출근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너는 캐리어 손잡이를 끌며 조용히 걸음을 내디뎠다.

사방이 조용해서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스치며 내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마치 내가 너를 잡지 못하는 마음의 자국을 긁어내는 소리 같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멀어져 가는 너의 작고 여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캐리어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걸어갔다.

내 눈은 네 뒷모습을 쫓아서 가고 있었다.


저 작은 뒷모습이 혼자서 감당해야 할 무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네 모습이 하나의 점이 되어 점점 소멸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너는 촛불처럼 집을 따뜻하게 채우는 존재였다.

네가 있을 때는 꽉 찬 공간처럼 느껴지던 집이 네가 떠나고 나니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내 마음을 추슬렀다. 아직 너는 작고 여린 존재였다.

아직 너는 따뜻한 집이 필요한 나이였다. 그런 너를 너무 일찍 공부라는

공간에 밀어 넣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속에 있던 실타래가 엉켜지는 기분이었다.




네가 어릴 때는 나는 네 앞에서 걸었다. 혹시나 네 발에 걸리는 돌부리가 없는지,

위험한 것이 없는지 살펴 보고 조용히 네가 올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너는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며 내 뒷모습을 보고 따라왔다.

마치 내 뒷모습이 네가 나아갈 길이라는 듯이 아무 의심 없이 걸어왔다.


나는 가끔 뒤를 돌아보았다. 네가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시선이었다.

너는 나를 따라 열심히 걸어 왔다. 하지만 내 한 걸음이 너에게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도 너는 그 작은 발걸음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런 너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네가 조금 더 커가면서 나는 네 손을 잡고 걸었다.

작고 앙증맞은 손은 커다란 내 손에 폭 싸여서 쏙 들어왔다.


네 따뜻함이 전해져 왔다.

그 따뜻함은 내 체온까지 데우고 내 마음마저 부드럽게 녹여냈다.


우리는 네가 멈추면 멈추고, 네가 걷는 만큼 함께 걸어갔다.

너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마치 친구를 만난 듯 정답게 바라 보았다.


너는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해서 늘 주변을 밝게 하는 존재였다.

그런 천진난만한 네 얼굴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너는 엄마 손을 동생들에게 내주면서부터 언제나 한 발짝 앞서 걸어갔다.

마치 길잡이처럼 앞서 걸으며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우리가 잘 오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처럼.



네 작은 손을 꼭 잡고 걸었던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서

내 눈은 너를 쫓아가지만, 손을 잡아 주지는 못했다.


너는 언제나 주위에 피어있는 꽃들에게 인사를 했다.

너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단풍을 보면 작은 손으로 보여주며

“ 엄마, 단풍 예쁘죠? ‘활짝 웃으며 물었다.


예전에는 우리가 함께 보며 즐기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너는 혼자서 감탄하며 그 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우리가 함께해야 할 작은 기쁨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주 작고 여린 네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 걸었다.

너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나를 안내하는 길잡이였다.


나는 그 옛날 어린 너처럼 아무 의심 없이 네가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네 단단해진 발걸음이 기특하면서도 내 손을 떠난 작은 손의 온기를

오래 붙잡아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네 뒷모습을 보았던 것이 그때부터였을까?


어둠 속에서 멀어져 가는 네 뒷모습을 보니 그 날들이 떠올랐다.

키도 커지고 마음도 커진 아이가 되었지만

저 작은 어깨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내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어린 네가 혼자서 씩씩하게 걸어 갔던 것처럼

너도 우뚝 솟은 나무처럼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을 잘 풀어 갈거라고 믿는다.


너는 더 이상 내 손을 찾지 않아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런 너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걷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네 뒷모습을 보고 있다. 작고 여리다고 생각했던 너는

이제 키가 커지고 마음도 커진 어른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나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 먼저 길을 나서며 나를 앞질러 갔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을 알려주고,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뒤에서 천천히 걸으며 우리의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나를 따라 아장아장 걸어오던 너를, 작은 손을 잡고 함께 걷던 시간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추억이 되어 버렸다.


어느새 너를 따라 걷는 나는, 네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내 품 안에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네 뒤를 따라갔다.


네가 가는 길이 어디든지

나는 그 뒤에서 묵묵히 따라가기로 했다.


이제는 손을 잡아 주지 않아도

너는 스스로의 길을 잘 헤쳐 나갈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너의 뒷모습이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만


네 등을 바라보며 걷는 이 시간이

너무 빨리 끝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