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우연히 내 친구를 아는 이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 그 친구, 몇 년 전에 몸이 아파서 멀리 갔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믿기지 않는 말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계란죽만 보면 생각나는 내 친구,
벌써부터 마음이 짠해진다.
우리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유일한 두 명이었다.
그래서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시험을 못 봤다고 속상해하면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돼!"
하고 용기를 주던 친구였다.
나보다 키도 커서 항상 언니처럼 나를 챙겨주는 친구였다.
우리는 어디를 가던지 함께 다녔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었다.
막막하고 힘든 타지 생활에서
친구는 나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어느 날은 몸이 아파 자취방에서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부모님은 멀리 있어서 아파도 달려와 줄 수 없었다.
밥은 먹지도 못했고 약은 사러 갈 기운도 없었다.
혹시나 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해다.
마침 본가에 안 가고 자취방에 있었던 친구는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아픈 나를 보고 달려가 약을 사 오고, 계란죽을 끓여서 먹어라고 내 앞에 내밀었다.
친구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처음 먹어 본 계란죽.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친구가 끓여 준 계란죽 참 맛있었는데...
아마 친구의 마음 때문에 더 맛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때 내가 기억하는 것은 계란죽보다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친구의 눈빛이었다.
오래도록 그 눈빛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나를 걱정하는 누군가의 눈빛을.
우리는 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가끔 먼 장거리 버스를 타고 가서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고 잊혀 갔다.
나는 가끔 계란죽을 먹을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하는 생각 하면서.
그런데 몸이 아파서 멀리 떠났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보다 건강하고 밝은 친구여서 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친구의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야 하나?
진짜 그 친구가 멀리 떠났는지 전화라도 해야 하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방황 속에서 점점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쩌면 나는 친구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전화를 걸어서 사실을 확인하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내 마음속에서 친구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래도 친구를 만나러 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앞에서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했어야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지 못한 말들을 쌓아 놓고 산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말들이
어느 순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마음속에 남아 버린다.
하지 못한 말들은
마음속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그러다 문득 어떤 계절에,
어떤 기억 앞에 서면
그 창고문이 열리는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 말들을 조금 더 일찍 꺼내 놓았어야 했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친구에게 하지 못한 말들도
그 창고 어딘가에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너무 쉽게 다음으로 미뤄 두기도 한다.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언제나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다음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요즈음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면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바로 핸드폰 전화번호부에서 번호를 찾아 망설이지 않고 통화하기 버튼을 누른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