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 그릇

느린

by 은하연



느리다


「형용사」


1」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

. 추위와 굶주림, 피로가 겹쳐 사병들의 동작은 흡사 굼벵이처럼 느리고 우둔하다. ≪홍성원, 육이오≫

더 보기「비슷한말」 서완하다(徐緩하다), 완하다(緩하다)「반대말」 빠르다


「2」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

「3」 기세나 형세가 약하거나 밋밋하다.

「4」 성질이 누그러져 야무지지 못하다.

「5」 꼬임새나 짜임새가 성글거나 느슨하다.


한 걸음 더

·‘느리다’는 ‘늘이다’와 구별하여 적어야 한다. ‘느리다’는 ‘걸리는 시간이 길다’의 뜻을 나타내며, ‘나무늘보는 행동이 느리다.’와 같이 쓴다. ‘늘이다’는 ‘더 길어지게 하다’의 뜻을 나타내며, ‘치마 길이를 늘여서 입었다.’와 같이 쓴다. <국립국어원 표준어대사전 >







"엄마 괜찮으세요?"


퇴근하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근무하면서도 조금 증상이 있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지러워서 바로 누워 버렸다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 응 , 엄마가 몸이 안 좋네. 어떡하지! 저녁 식사도 준비해야 하는데..."


"제가 한 번 해 볼까요?"

"응 그럴래!"


딸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이건 어떻게 해요?

"엄마, 저건 뭘 넣어야 해요?

눈을 감고 누워서 이렇게 하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 저 녀석이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엄마, 저녁 드세요!"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눈물이 핑~돌았다.

나는 한동안 그 국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릇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김이

내 마음까지 천천히 데우고 있는 것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작은 아이였다.

또래보다 발달도 조금씩 늦은 아이였다.

손이 많이 가고, 늘 내가 챙겨야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 품 안에 있는 작은 아이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마음도 몸도 자라고 있었다.



나는 국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의 다음 말이 내 가슴을 더 뭉클하게 만들었다.


" 엄마,

다른 가족들은 모르겠고 엄마 먼저 드세요."


엄마가 아프니까 먼저 먹어야 한다면서

얼른 먹으라고 재촉했다.


이 녀석, 언제 이렇게 컸니?


나는 딸아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아이의 느림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것은 보려고 하지 않고 아이의 느림만 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느린 시간 속에서도 아이의 마음은

이렇게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지나가자 몸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아이의 느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는 순간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에는 느림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느리다는 것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딸아이의 성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느리고 조용했지만

그 느린 시간 속에서도 아이의 마음은 분명히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날 나는 아이가 느리게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속도로 차분히 자라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느린 시간을 따라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다시 바라보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 국수 한 그릇처럼 천천히 끓여야

제 맛이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천천히 자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도 그리고 나도

각자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단지 아이의 속도와 내 속도가 달라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것이다.





나는 말없이 국수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올렸다.

따뜻한 국물이 천천히 목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조용히 생각했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조금씩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사실 국수는 몹시 짰다.

하지만 아이 마음이

담겨 있어서인지

그날 먹은 국수는 참 따뜻하고 맛있었다.


아마도 그날 나를 더 따뜻하게 만든 것은

국수의 온기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먹었다.

" 딸~ 맛있게 잘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