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문 여름의 숨

애틋한

by 은하연


애틋-하다

「형용사」


「1」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

태임이가 시집으로 떠날 때, 비록 울며불며 배웅한 친정 부모도, 애틋하게 매달리는 동기간도 없었지만 많은 동네 사람이 나와서 친척들보다 더 애석해했다. ≪박완서, 미망≫

「2」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다.

. 계숙이가 오늘까지 수영에게 대해서 이다지도 애틋하게 사랑과 기쁨을 느껴 보기는 실로 처음이었다. ≪심훈, 영원의 미소≫

. 모든 것들이 의좋게 한데 어울려서 지섭의 젖은 기분을 애틋하게 어루만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청준, 춤추는 사제≫






"안녕, 이렇게 높은 곳까지 왜 올라왔니?"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는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로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에는 우리 집 방충망에 매미가 자주 출몰하였다.


20층 가까운 곳까지 올라와서 방충망에 몸을 지탱해 가며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니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붙어서

마치 거실을 지켜보는 듯 매달려 있었다.


매미가 자주 보이니 왠지 친근하게 느껴져서

말을 건넸다.


매미는 마치 내 말을 듣는 것처럼 조용히 방충망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내 중얼거리는 하소연을 듣는 것 같던 매미가 어느 순간 날아가 버렸다.

나는 친구가 떠난 것처럼 매미가 날아간 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다음날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려고 뒤 베란다에 갔는데

창문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전날 본 그 녀석인가 싶어서 반가운 마음에

"안녕~"

하고 인사하니 매미가 갑자기 "매~앰"하고 울면서 대답을 하였다.

너무 신기해서 매미에게 계속 말을 걸었더니 그 뒤로는 조용히 듣기만 할 뿐

묵묵부답이었다.


"여보 내가 매미한테 인사를 했는데 매미가 대답을 했어."

내 말을 들은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나는 매미와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영적인 것이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매미는 내 주저리주저리 하는 소리를 열심히 듣는듯하더니 이제 시끄러워서 못 듣겠는지

날아가 버렸다.




매미는 땅 속에서 유충으로 오래 지내다가 세상에 나와서는 고작 7일 정도를 산다.

그 짧고 소중한 시간 중에 잠시나마 우리 집에 머물러 주니, 괜히 마음이 벅차다.


그러다가 문득 혹시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미지 할머니가 떠나면서

구름으로, 꽃으로, 나무로, 새로 찾아온다고 했는데

혹시 그런 것을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를 사랑했던 이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려고 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아려왔다.


어느 날은 매미 2마리가 거실 방충망에 붙어서 우리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엄마, 아버지처럼.


나는 방충망에 붙어 있는 매미가 꼭 엄마, 아빠 같았다.

작은 발로 촘촘한 그물을 붙잡고,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떨어질 듯하면서도 결코 놓지 않는 그 단단함이 낯설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저런 모습으로 서 있었으리라?

겉모습은 평온한 듯 하지만

작은 두 발로 아슬아슬하게 방충망에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살아갔으리라!


나는 한참을 창가에 서서 매미를 바라보았다.


바깥은 눈부시게 밝았고, 안쪽은 조용했다.

그 사이에 얇은 방충망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문득 그 방충망이 부모의 자리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거친 것들은 막아 주고, 안의 평온을 지켜 주는 자리.


어릴 적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안에서만 있었다.

비가 얼마나 차가운 지도, 바람이 얼마나 세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저녁이면 차려지는 밥상이 있었고,

말없이 등을 내어 주던 두 사람의 존재가 전부였다.


둥근달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던 그날이 떠오른다.

아버지 등은 곧았지만 어깨는 조금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달빛 아래에서

아버지는 혼자 말하지 못한 무게를, 말없이 삼키며

그 시간들을 건너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늘 방충망처럼 서 있었던 것 같다.

티 나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그리고 힘들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을 먼저 건네며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매미는 잠깐 매~앰하고 울더니 다시 고요해졌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래 참아 온 마음의 진동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히 창가에 가까이 가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음이 저릿해졌다.


누군가의 바깥이 되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뜨겁고 외로운 일인지,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나는 이제야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돌아가시고도 딸이 걱정되어 다른 모습으로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틋하다는 말은

곁에 있을 때는 몰랐다가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계실 때는 당연하게 생각되던 모든 것들이

떠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사랑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어디서든지 그들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방충망에 붙어 있던 매미는 날아가 버렸다.

나는 매미가 떠나간 자리를 마치 엄마 아빠가 떠난 것처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고맙다고.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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