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집 앞에서 아버지는 오래도록 서 계셨다.
나는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아버지를 계속 보고 있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란다."
전화기 속으로 들려오는 오빠의 뒷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이미 전화기는 내 손을 벗어나 내 몸과 함께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허둥거렸고, 머릿속은 어찌해야 할지 어질어질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셨다.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그 앞에서는 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행동했다.
아버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왔냐"
그 한마디는 늘 듣던 말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제 어쩌면 이 한마디를 들을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는 내 표정을 살피지 않으셨고, 자신의 이야기도 꺼내지 않으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날처럼,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처럼 그렇게 앉아 계셨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목 안쪽으로 무언가가 울컥 차 올라서 한마디라도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아버지의 거칠고 주름진 손이 보였다.
평생 농사일을 하며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손이었다.
이제는 저 손이 일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다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둥그런 밝은 달 아래, 마당에 서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조용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달빛은 아버지의 어깨 위에 슬며시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을 달빛에만 맡기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창문 앞에 서서 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항상 크게 느껴지던 아버지의 등이 그날은 왠지 모르게 작아 보였다.
지금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자신의 몸에 대해,
아니면 지나온 시간에 대해,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계시는 걸까?
아버지는 평소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분이셨다.
화가 나면 버럭 화를 내셔서 그 속마음을 다 보여주는 투명한 분이셨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아버지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하시는 것 같았다.
달은 둥글고 환했지만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아버지도 혼자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 시간 속으로 나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끝내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달빛 아래 서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의 등은 나에게 처음으로 슬프게 느껴졌다.
며칠 후 집을 나서던 날, 아버지는 평소처럼 말씀하셨다.
"조심해서 가라."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는 집 앞에서 오래도록 서 계셨다.
나는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아버지를 계속 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조용히 침묵 속에 한동안 서 있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그 밤을 떠올린다.
둥그런 달 아래 서 계시던 아버지의 뒷모습.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아버지는 그렇게 끝까지 담담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계셨다.
나는 이제야 그 담담함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1」 차분하고 평온하다.
「2」 사사롭지 않고 객관적이다.
「3」 물의 흐름 따위가 그윽하고 평온하다.
「4」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담백하다.
. 국에 간을 안 했는지 담담하다.
「5」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담백하다.
. 점심때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담담한 음식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