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살아보니 인생은 혼자더라. 마누라가 옆에 있어도, 자식이 옆에 있어도
결국 안생은 혼자더라. 그래서 외로움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더라"
오래전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셨다.
그때 내 나이가 20대쯤이었다.
그 말에 들어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나이였다.
식탁에는 고요와 정적만이 흘렀다.
이곳은 조금 전까지 아이들의 왁자지껄하고 시끄러운 소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 순간 그 소리들은 어디론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모두가 떠나고 식탁만 덩그러니 홀로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이 순간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온다.
처음에는 마음 한 구석에 작게 자리를 잡은 듯하던 외로움이
시간이 갈수록 마음 전체를 잠식해 버렸다.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듯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식탁에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항상 엄마만 찾던 시간들이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엄마만 찾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고 바쁘다.
이제 식탁은 밥을 제공하는 장소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식탁은 혼자 쓸쓸히 그 자리를 지키는 날들이 많아졌다.
고요한 식탁에 홀로 앉아 있으니 아버지의 그 말이 자꾸 생각이 난다.
' 아버지도 그때 많이 외로우셨구나!'
그 말에 들어있는 의미를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한동안 내 마음은 외로움이 잠식해 버렸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울한 날들을 보냈다.
" 부모도 자식에게서 졸업을 해야 한다."
TV 어느 프로에서 들은 이 말이 나를 강하게 때렸다.
그랬다. 나는 아직도 자식에게서 졸업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매달리며 사는 엄마였다.
부모가 되는 순간은 분명하지만 부모를 내려놓는 순간은 애매하다.
그래서 부모는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로
계속 자식을 붙들고 싶은 마음이 많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듯,
부모도 어느 순간 역할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온다.
자식은 이미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이제 부모의 역할은
자식에게 방향을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떠나버린 외로운 마음을 채우려고 책을 펼쳤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동화책만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었다.
시간이 갈수록 책에 있는 활자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뼈가 되고 살이 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고, 힘들 때 용기를 주는 글귀들이 있었다.
책은 세상에 어떤 이치도 다 가르쳐 주는 존재였다.
그 활자들 속을 헤엄쳐 다니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어느새 책은 텅 비어 있던 내 마음을 가득 채워 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책은 나에게 왔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노트북을 샀다.
노트북 속에 내 마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적기 시작했다.
조용한 식탁에서 키보드의 따닥따닥 노랫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뿌듯함이 밀려왔다.
뭔가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행복해졌다.
텅 비어 있던 나를 가득 채우고 나니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인생도 즐거워졌다.
언젠가 노트북에 쌓인 글들을 출판하고 싶은 작은 욕심도 생겼다.
이제 조용한 식탁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식탁에서 책을 읽는 나를 보고 무관심하던 아이들이
“ 엄마, 무슨 책이에요?”
하며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외로움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없다.
그냥 침입자처럼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피하려고만 했다.
외로움을 인정하면 괜히 마음이 약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외로움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였다.
겉으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나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가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 괜찮냐고?"
성장은 늘 밝은 곳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틈에서도 자란다.
내 마음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다 보면
외로움은 더 이상 두려운 감정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외로움이 찾아오면
조금 천천히 앉아 있으려 한다.
그 시간 끝에는 언제나 조금 더 성장하는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 나는 한 번도 고독만큼 좋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외롭다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하다.
예 1) 바우 역시 어렸을 때 영산강 큰 물에 부모를 잃고 꼴머슴으로 그 집에 빌붙어 살아온 터라
피붙이가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문순태, 타오르는 강≫
2) 죄인의 몸이 되어 강진에 유배된 그는 죄인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고장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외롭고 서러운 신세였다. ≪한무숙,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