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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껍질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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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n 22. 2022

당당한 음치는 아름답다.

껍질을 두껍게 만드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날, 널찍한 2층 집에선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하늘은 맑았으며 산 중턱에 있어서 그런지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잔디로 뒤덮인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돌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한 사내가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그의 몸이 조금씩 흔들렸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밤하늘의 별은 밝지만, 그의 눈에 비친 별은 흐릿했다. 그렇다. 사내는 울고 있었다. 창희였다.  


30분 전, 창희는 기계 앞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아니 노래방 책을 이리 폈 저리 폈다 하면서 노래를 고르고 있었다. 실은 고르는 척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겠지. 그가 노래를 고르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창희는 노래를 못한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는 것을 떠나 무서워한다. 창희가 노래를 고르지 않자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소위 실세였다) 갑자기 큰 소리로, "창희가 노래를 부를 때까지, 아무도 마시지도 말고,  먹지도 말고, 얘기도 하지 마"라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불편한 상황. 아. 가시방석에 앉아도 이보다 불편하진 않으리라.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퍽"

누군가 창희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란 창희는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경식이었다.  

"너, 새꺄. 뭐 하는 거야? 너 때문에 분위기 망쳤잖아!"라며 경식이는 소리를 질렀다. 머리를, 그것도 많은 동료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맞았다는 데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창희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창희는 스스로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것이 싫었을 뿐인 창희에게는 잘못한 것이 없었음에도, 자기 때문에 즐거운 분위기가 망가졌다는 자책감이 분노보다 더 컸던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던 창희는 자신이 알던 노래 중에서 아무 노래나 골랐다. 윤도현 밴드의 '너를 보내고'를 선택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독자 여러분들도 생각해보라. (1) 엄청난 음치가 (2) 기분이 아주 나쁜 상태에서, (3) 아주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4) 그것도 슬픈 가사의 (5) 잔잔한 노래를. 분위기를 아주 망치기로 작정한 것인가? 창희의 5단 콤보 공격에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리는 조용하다 못해 숙연해졌다. 창희를 때리면서 노래를 강요한 경식이도, 창희가 노래를 부를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던 그 사람도,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그 누구도 뭐라 할 수가 없는 묘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외줄을 타는 듯한 아슬아슬한 분위기. 그 분위기를 누구보다 버티지 못한 것은 창희 자신이었다. 1절을 다 부른 그는 노래를 정지시키고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고, 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돌 위에 누워 혼자 울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는 큰 행사를 마친 뒤 마련한 흥겨운 뒤풀이 장소였다. 2달간의 고된 합숙, 한 달 간의 행사 진행. 도합 3달이 넘도록 고생한 사람들이 무사히 행사가 끝낸 것을 자축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창희는 그 모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위치에 있었고, 그만큼 많은 일을 했으며, 그가 고생을 한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진행팀 한 명 한 명이 다 중요했지만, 창희는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창희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이렇게 혼자 나와서 울고 있는, 서러워서 울고 있는 것이다. 창희는 자신이 싫었다. 미웠다. "노래 하나 못한다고 그 자리에 함께 어울리지 못하다니 한편으로는 어이도 없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음치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지, 음치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창피를 당했는지, 창희는 넓은 돌, 하지만 차가운 돌에 누워 울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창희가 처음으로 자신이 음치라는 것을 인식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안, 2학년 7반 학생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한 명씩 한 명씩 돌아가면서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은 그때만 해도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선창을 시작으로 여러 친구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창희의 차례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창희는 자신이 음치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런 말조차 모르고 있었다. 창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순간, 버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단지 두 소절을 불렀을 뿐인데. 100개 가까이 되는 눈이 동그래 졌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하는 눈으로, 못 볼꼴을 본 듯한 눈으로 창희를 쳐다봤다. 그 100개의 눈은 창희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단 두 소절만 불렀을 뿐, 이 기억 뒤에 떠오르는 기억은 버스에서 내리는 풍경이었다. 그 사이의 기억은 창희의 뇌리 속에서 사라졌다. 그날 창희는 자신이 노래를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창희는 몸이 으스스 떨렸다. 자신을 쳐다보던 100개의 동그랗고 황당한 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슬프고, 무서운 기억이다. 이내 창희에겐 또 다른 기억, 슬픈 기억이 떠올랐다.  


창희는 친구 학수와 함께 노래방에 갔다. 둘이 간 것은 아니었다. 학수의 여자 친구 진희가 함께였다. 진희는 창희의 친구이기도 했다. 즉, 셋은 친구였는데, 둘이 사귀게 된 것이다. 학수는 진희와 데이트를 할 때면 꼭 창희를 데리고 나갔다. 둘이서만 있기 쑥스럽다는 이유였고, 평소 창희와 진희가 친했기 때문에, 어색함을 덜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둘의 데이트가 있었고, 앞서가는 둘의 뒤에서 창희는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학수가 진희와 함께 노래방에 들어갔다. 창희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학수는 노래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잘 놀았다.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진희도 즐거운 듯했다. 학수는 창희에게도 노래를 하라고 권했다. 창희는 연거푸 거절했지만, 계속 거절할 수많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학수가 크게 웃으며 창희를 놀렸다.  

"너 노래 정말 못한다."라고 큰 소리로. 옆에 있던 진희도 작게 웃었다. 그런 진희를 보며 창희는 큰 창피를 느꼈다. 창희는 속으로 진희를 좋아했었던 것이다.  


이번 기억은 서글펐다. 학수가 미웠고, 진희가 미웠다. 진희는 잘 못한 것이 없지만, 그날 이후로 창희는 진희를 피해 다녔던 기억을 떠올렸다.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듯이 창희는 자연스레 다음 기억을 떠올렸다.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나면 으레 술자리가 생겼다. 동아리뿐이랴, 학과 모임, 동창 모임, 그냥 친구들 모임, 술자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겼고, 그런 술자리의 끝은 십중팔구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평소 술을 못하는 창희는 적절히 빼가며 술을 조금만 마신다. 많이 마셔도 긴 시간 동안 마신다. 하지만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노래방 갈까?"라는 말이 나오면, 또는 다음 행선지가 노래방으로 정해져 있으면, 창희는 술을 연거푸 마시곤 했다. 갑자기 술을 많이 마시면 술이 약한 창희는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술자리가 파하면 사람들은 창희를 집에 보내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 창희는 술기운을 빌려(사실 정신은 멀쩡했다) 잠을 청한다. 노래방 기기에서 가장 먼 곳, 그러면서도 기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잠들어 버린다. 그게 창희의 일상이었다.  


어느 날, 창희는 여느 때처럼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설핏 잠에서 깼다. 그때 친구들(또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야, 재(창희) 뭐냐? 쟨 왜 자만 자냐?"

"술이 약하잖아."

"그럼 집에 가던가, 노래방에 와서 잠만 자는 건 뭐냐? 분위기 깨게, 아 재수 없어."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자기를 험담하는 얘기를 들은 창희는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일어나서 자기 욕하지 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우선 자기가 일어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이 뻔했고,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색해지는 것은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깨어나면 "야, 깼냐? 그럼 노래해라"라고 말을 들을까 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일은 창희가 기억하지 못할 뿐 때때로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창희는 눈을 감고 스스로를 욕했다.  

"이 등신아"

"병신, 그깟 노래가 뭐라고 누워서 이런 수모를 당하냐?"

"분하지도 않냐? 일어나서 그러지 말라고 얘기도 못하는 너 참 못났다."

라고 욕을 해댔다. 자신에게 그렇게 욕을 하는 기분은 참담했다.   


노래가 뭐라고, 그러게 그깟 노래가 뭐라고 그래야만 했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창희는 자신이 노래를 못한다는 것을 정말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매번 노래방에 때마다 잠을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때론 술을 마시지 않고 노래방에 갈 때도 있었다. 노래를 안 한다고 열심히 거절했지만, 분위기에 따라 노래를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창희가 노래를 할 때만 되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100개의 눈의 공포가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물론, 모든 눈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웃는 눈도 있었다. 노래가 너무 이상해서 웃는 웃음. 하지만 찡그린 눈이건, 황당한 눈이건, 웃는 눈이건, 노래하는 그를 바라보는 눈은 모두 공포의 눈이었다. 적어도 창희에게는.  


창희는 노래방이 싫었고, 노래방 기기를 싫어했다. 마냥 즐겁다가도 노래방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몸이 경직되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그에겐 당연할 일이었다. 즐겁게 뒤풀이를 하러 갔던 바로 그날 뒤풀이 장소에 노래방 기기가 있었던 것이다. 노래방 기기가 창희의 눈에 띈 그 순간부터 돌 위에 홀로 누워 우는 창희의 모습은 예견된 것이었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고, 그 어느 때보다 슬펐고,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웠던 것 만이 달랐을 뿐이다.  


창희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 아무도 그를 잡지 않았다. 안에 있던 사람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잠시 정적에 빠졌던 자리는 조금씩 조금씩 다시 시끄러워졌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창희는 혼자 울었다. 계면쩍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몇 시간이고 계속 혼자서 있다가 창희는 안으로 들어갔다. 뒤풀이 자리는 이미 파했다. 사람들은 방으로 또는 거실에서 각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노래방 기기 앞에 두 명의 동생들이 앉아서 작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평소에 편했던 동생들이기에 그 사이에 가서 자연스럽게 앉았다. 동생들이 위로하듯 말을 건넨다.

"오빠, 뭐 했어요? 기분은 좀 괜찮아요?"

"형, 기분 나빴죠? 나가 보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창희는 괜찮다고 말을 했다.  

"오빠, 저 있잖아요. 오빠 노래 듣고 싶어요. 오빠가 노래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아까 오빠가 그렇게 나갈 때 마음이 아팠어요. 근데요 오빠. 그래도 오빠 노래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전 오빠가 노래 잘하고 못하는 거 상관없어요. 그냥 오빠가 부르는 노래가 듣고 싶은 거예요."

"맞아요. 형, 노래 못하면 또 어때요? 그냥 우리끼리 있으니깐, 편하게 한번 불러보세요. 형도 한번 풀어보고 싶지 않아요?"

동생들의 성화에-아니 그것은 따뜻한 위로와 격려였다. 창희도 알고 있었다- 창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옆에서 작게 따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데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를 부르며 창희는 "내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으리라, 노래 그까짓 게 뭐라고 나를 이렇게 처량하게 만든단 말이냐?"라고 생각을 했다. 강한 충격이 그에게 강한 반발과 더 강한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며칠이 지나고, "어떻게 노래 연습을 하지?" 창희는 고민에 빠졌다. 언젠가 "음치 교정"이라는 것을 본 기억에 그것을 검색해 봤지만, 그의 생활권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노래방에 혼자 가는 것은 창피했다. 고민을 하다가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오락실에 "동전 노래방"이 있는 것을 떠올렸다. 창희는 매일 거기서 노래를 불러보자고 생각했다. 학교 가는 길에 한번, 집 가는 길에 한번, 그렇게 두 번씩만 하기로 했다. 한 번에 300원. 비용도 부담이 되지 않아서 좋았다.  


"학교로 가는 길에 오락실에 들어간다. 창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300원을 넣는다. 노래 버튼을 누르곤 마이크를 손에 쥔다. 기계에서는 간주가 흘러나온다. 노래 가사가 뜬다. 노래 가사의 색깔이 바뀐다. 하지만 창희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음악이 가사가 계속 바뀐다. 3분이 지난다. 노래가 끝난다. 창희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다. 문을 열고 나온다. 학교로 간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노래 한곡, 아니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하고 앉아있다가 나온다. 차마 부르지 못한다. 사람들이 들으면 뭐라고 할 것만 같다.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음치라고 놀릴 것만 같다."  


그렇게 1주일 정도 지나자, 창희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한심 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창희는 한번 용기를 내 보기로 결심했다. 소리를 내기로 했다. 했다. 노래방 부스에 앉아서 마이크를 들고 화면을 바라본다. 간주가 끝나자마자 부르기 시작했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아니 속삭였다고 해야 할까? 아주 작은 소리였다. 밖에서 들릴 리가 눈곱만치도 없었음에도, 인기척이 나면 순간 노래를 멈췄다.(그것도 노래라고 할 수 있다면) 인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음악이 다 끝났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 창희의 얼굴에서 어색하지만, 작은 미소가 번졌다. 비록 조금이지만, 소리를 내었던 것이다. 어쨌든 소리를 내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 작은 소리가, 드문 드문 끓기면서 났던 작은 소리가 창희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힘찬 손짓이었다. 창희는 그날 이후 노래방 부스에 앉아서 작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인기척이 있다고 해서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나날이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그렇게 며칠이 또 지난 어느 날, 그날은 창희가 기분이 좋았었는지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창희는 정신을 차렸다. 밖에 나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자신이 있는 부스를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잔뜩 웅크러진 채로 있다가, 학교에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부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근처에서 오락을 하던 사람이 인기척에 잠시 고개를 돌려 쳐다봤을 뿐이다. 그리곤 곧 자신의 게임에 다시 집중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 사람들이 자신을 놀릴 거라는 두려움은 모두 착각이었다. 창희가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 속의 상상일 뿐이었다. 그게 모두 자신의 헛된 두려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희는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구나!,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어떻게 부르던 큰 상관이 없는 거 아냐? 내가 노래를 잘 부르건 말건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 내가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이 웃은 건 노래 때문에 웃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깐 내가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의 웃음이 나를 비웃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 창희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들이 계속 떠올랐다. 오랜 시간 동안 창희를 위축시켜왔던 껍질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순간 창희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후 창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떠올랐다. 목소리가 커졌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덜 신경 쓰게 되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을 하게 되고, 점점 당당해졌다. 문득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자신을 쳐다보며 웃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내 노래가 웃기다는 거지? 그럼 내가 너네를 기꺼이 웃겨주겠어."라고 다짐을 했다. 창희는 크게 샤우팅 하는 노래를 골라서 연습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여전히 노래를 못했지만, 그것은 큰 상관이 없었다.  


무작정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는 없는 법, 창희는 평소 친했던 모임의 동생들에게 같이 노래방에 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어렵게 부탁을 했어야 했는지. 노래방에 같이 가자는 그 평범한 말을 꺼내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수십 번을 연습하고, 가까스로 말을 꺼냈었던 것이다. 동생들과 노래방에 같이 간 창희는 우선 가장 자신 있는, 아니 가장 많이 연습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안치환)"를 불렀다. 동생들의 반응은 좋았다. 당당하게 부르니 들어줄만하다고 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그리고 두 번째로 준비한 "담배가게 아가씨(윤도현 밴드)"를 불렀다. 중간에 "아자자자자자자 아자자 자자 자자자자자자자자 하늘빛이 노랗다"이 부분을 미친 듯이 샤우팅 하면서 불렀다. 동생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닷. 미친 듯이 웃는다. 성공이다. 음치라는 껍질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노래를 못 한다는 사실을 신경 쓴 사람은 나 혼자였던 것이고, 그것 때문에 위축되고 했던 것도 결국 나 혼자 그랬던 것이 아닐까? 껍질을 두껍게 만들었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구나. 내가 두려워하고 움츠러들수록 껍질은 더 두꺼워졌고, 더 두꺼워질수록 더 깊이 숨어버리는 악순환을 나 스스로 만들었구나. 내 껍질은 두껍게 만드는 것도, 껍질을 깨는 것도 모두 내가 해야 되는 거구나.  


아주 작은 사건이 큰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그날 오락실에서의 깨달음이 그러했다. 상황 자체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창희의 깨달음은 그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줄 만큼 거대했다. 창희는 이젠 노래방에 가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노래를 잘하냐고 묻는다면? 음, 그건 아니다. 여전히 노래는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노래를 즐긴다는 것이다. 이제는 노래방에 가서 두 곡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권할 때마다 계속 노래를 부른다.  


창희는 못한다고 움츠러들면 더 작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론 못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당당히 드러낼 때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희는 "당당한 음치는 아름답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착각일지 모르지만, 창희는 자신의 노래 실력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고, 스스로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만일 다시 그날, 혼자서 울분을 토했던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주 신나게 사람들과 어울리면 놀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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