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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Oct 29. 2022

요리가 즐거워졌어요.

요리에 대한 공포 극복기

1. 헤세에게 생긴 변화 

헤세는 작은 애를 데리고 마트에 들어갔다. 컵라면과 과자를 사려고 잠깐 들른 것인데, 헤세의 눈이 자꾸 식재료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아이에게 라면을 고르라고 말을 하고선 기어이 식재료 코너로 발길을 돌린다. 진간장, 국간장, 양조간장, 고추장, 굴소스, 맛술, 물엿, 소금, 된장 등 각종 조미료들과 소스들이 있는 곳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두려움이 아닌, 막막함이 아닌, 심장 멎을 듯한 답답함이 아닌,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설렘 가득한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헤세도 그런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하다.  


"애들아, 오늘은 뭐 해줄까?" 헤세가 약간 긴장된 상태로 말하자.  

"음, 고구마 맛탕 해줘"라고 작은 애가 말한다. 

"어, 아빠 나도 맛탕 좋아"라며 큰 애가 맞장구를 친다.  

"고구마 맛탕? 해본 적 없는데, 알았어. 해줄게"라고 헤세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는 만개의 레시피 앱을 열고 고구마 맛탕을 하는 법을 검색한다. 고구마를 까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전자레인지에 2분간 돌린다. 돌린 고구마를 꺼내고 기름을 듬뿍 두른 프라이팬에 고구마를 넣고 튀긴다. 고구마의 겉이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게 먹음직하게 익었을 때 고구마를 다 꺼내 종이 포일 위에 얹어 기름을 거른다. 그 사이에 물엿과 설탕 등을 프라이팬에 넣고 설탕이 녹기 시작하면 튀긴 고구마를 넣어 버무린다. 노릇노릇하고 끈적끈적한 고구마 맛탕. 식탁에 올려놓으니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헤세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2. 요리가 무서운 헤세  

MT를 가는 날이다. 동아리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민박집을 구했다. MT를 가기 전에는 미리 식단을 짜고, 재료를 준비해서 사간다. 그리고 끼니별 식사 당번을 정한다. 헤세는 이 시간이 정말 싫다. 요리를 못 하기 때문이다. 식사 당번을 같이 하는 동아리원에게 그는 "난 설거지할게"라고 미리 말한다. 그리고 요리를 할 때는 옆에서 조수 역할만 한다. 뭐 감자를 깐다거나 국자로 국을 젓는다거나 하는 그런 것 말이다. 헤세는 엠티를 갈 때면 항상 설거지를 자처했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동아리에서도 설거지 담당으로 인식했고 그에겐 요리를 맡기지 않았다.  


필사 모임. 헤세가 좋아하는 모임 중의 하나이다. 책을 정해 일정 부분을 필사하고, 그것에 대한 단상을 서로 나눈다. 여러 작가를 접하고,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식견이 높아지는 착각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 매번 열심히 참여했지만, 헤세가 집중하지 못했던 책이 하나 있었다. 권여선 작가의 '오늘 뭐 먹지?'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모임지기가 정해준 부분을 필사할 때마다 여러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음식? 그냥 배만 채우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헤세는 음식에 대해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게다가 그땐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라든가 공포감이 극도로 강했던 시기라서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헤세는 얘기할 것이 없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공감할 수 없는 외로움을 견디는 고통으로 몸부림쳐야 했다. 


헤세가 텔레비전을 볼 때 종종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 있다. 맛집에 가기 위해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먹을 곳이 그곳밖에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맛집이라고 TV에 나온 곳이라고 몇 시간씩 기다려서 먹는 사람들이라니, TV에서 극찬하는 맛이라니 그 맛이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먹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가고 또 기다린다니 차라리 김밥천국에 가서 육개장을 시켜먹고 남은 시간에 다른 것을 하리라. 맛집을 검색하고, 또 기다리는 행위는 그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정말 싫어하는 행동들이다.  


헤세는 공황장애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하얘지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고, 불안하고 초조하며 죽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헤세는 알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왜 이렇게 잘 알고 있냐고 묻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헤세는 공황장애라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증상을 느낀 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증상을 찾아보니 그게 공황장애였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헤세는 그런 증상을 어디서 느꼈을까? 바로 대형마트의 식자재 코너에서이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재료들, 한눈에 담을 수 없는 큰 진열장들에 수많은 채소들, 각양각색의 유제품들, 각종 고기들과 여러 가지 조미류들 무수히 많은 식재료들을 볼 때마다 자신은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한숨을 쉬던 그였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식재료 코너를 지나게 되었고, 한숨을 쉬려는 찰나, 헤세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팔다리에 힘이 풀리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도 주저앉고 싶었다. 창백해진 헤세의 얼굴을 보며 아내는 무슨 일인가 물었고, 헤세는 여기 있기 싫다고 간신히 말을 했다. 그리고 아내가 이끄는 대로 식재료 코너를 벗어났다. 그제야 그는 차차 몸이 진정이 되었던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헤세가 공황장애급의 증상을 느낀 것은 육아휴직 기간이었다. 아침저녁 하루 두 끼를 아이들 밥을 준비해야 했다. 자기 혼자 먹으면 김치에 김만 있어도 되고, 가끔 고기를 구워 먹으면 되는데, 아이들은 잘 준비를 해주어야 했다. 아이들은 입이 짧고 편식이 심했다. 그리고 헤세는 요리를 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요리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헤세와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의 만남은 모든 상황을 악화시키에 충분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어쩌다 큰맘 먹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요리를 만든다.(혼이 빠진 헤세) 

   -제대로 먹지 않거나 맛이 없다고 하는 아이들(마음에 상처를 받은 헤세)  

이 둘이 돌고 돌아 악순환을 만든다. 매일 아침과 저녁,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어야 할지 메뉴를 선정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더 이상 참기 어렵다고 느낄 즈음. 다행히 아내의 직장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바뀌어서 아내가 식사를 준비할 수 있게 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안 그랬으면 아마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헤세는 요리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3. 헤세의 깨달음.  

2022년 10월의 한 주말. 헤세는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갔다. 캠벨에서 주최하는 정모, 즉 단체 캠핑이었다. 항상 아이들만 데리고 다녔지, 누군가와 함께 가 본 적이 없는 헤세는 설레는 마음으로 캠핑장에 도착했다. 늦은 밤 부랴부랴 텐트를 치고,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헤세는 온라인상에서 친해진 다른 팀들에게 합류했다. 캠핑에 진심이며 파파 캠을 즐기는 분이나 요리를 즐기는 캠퍼를 만나서 많은 얘기를 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느냐로 주제가 옮겨졌을 땐 헤세는 부끄러웠다.  

"저 몇 달 전 캠핑 때는 큰 애랑 6 끼니를 라면만 먹었어요"라고 헤세가 말했을 때  

"그 정도면 캠핑을 다니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상대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헤세를 경악케 한 것은 다음날 점심이었다. 약 20팀 정도가 캠핑에 참여했는데, 점심은 각 팀별로 4인분씩 요리를 준비해오고, 다 같이 모여서 그것을 나눠먹는 것이었다. 뷔페식이라고 할까? 음식 나눔이라고 할까? 뭐 그렇다. 헤세는 눈꽃 치즈 닭갈비를 준비했다. 쿠팡에서 주문한 밀키 트이다. 그것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벅찼일이었다. 음식을 들고 준비된 식탁에 간 그는 깜짝 놀랐다. 정말 다양한 그리고 정성 가득한 요리들이 있었던 것이다. 또는 '이런 건 사서 먹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요리들이 나왔다. 물회에, 잡채, 돈가스, 육회, 마라탕, 파스타 등등 너무나 다양한 음식들. 자신의 요리가 부끄러워지는 헤세였다.  


수많은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배를 채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큰 애는 자신이 좋아하는 육회와 새우, 마라탕 등을, 작은 애는 로제 파스타를 주로 먹었다- 헤세는 속으로 반성을 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즐겁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 놀라웠다. 요리에 대해 얘기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요리로 저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처음으로(진심으로 느낀 것은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요리에 진심인 사람들, 요리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TV가 아닌) 헤세는 '그 즐거움을 나도 느끼고 싶다'라고 생각을 했다.


또한 그때 같이 어울린 팀들이 있었다. 마지막 날 다섯 집이 아침을 모여서 먹었는데, 그중에 둘째가 있는 집이 네 집이었다. 엄마 아빠들이 모여서 이구동성으로 "둘째가 너무 안 먹어서......"라고 말하며 걱정을 했다. 역시나 그때도 첫째들은 다 먹고 일찍 자리를 뜬 반면 둘째들은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어떤 아이는 정말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헤세는 위로를 받는 느낌을 들었다. 자신이 잘못해서 둘째가 잘 안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럼에도 어떻게든 먹이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헤세는 자신이 모습을 반성했다. "아이들한테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헤세는 캠핑을 다녀와서 아내에게 "아, 네 집에 둘째가 있는데 둘째들이 다 밥을 안 먹는데, 위안이 되더라. 근데 어떻게든 먹이려고 노력하더라고 그건 반성했어. 그리고 요리를 좀 해볼 마음이 생겼어"라고 한마디 했다. 아내는 "정모 잘 갔다 왔네"라고 말을 한다.  


4. 요리에 도전하는 헤세.  

 캠핑을 다녀온 이후로 한 달 동안 9개의 요리에 도전해봤다. 도전을 하면서 헤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요리에 대한 막연했던 두려움은 사라졌고, 만드는 동안 느꼈던 자괴감은 어떤 요리가 될지 기대하는 설레는 마음이 되었으며, 재료를 사러 갈 때마다 느꼈던 막막함은 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하는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식재료 코너에서 '난 아무것도 못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절망감은 '이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요즘 헤세의 인스타에는 요리에 대한 게시물이 계속 올라온다. 전에는 그림이나 바이올린, 캠핑에 관한 것들이 많았는데, 거기에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요리를 소개하고 그것을 하는 방법이 올라오면 그것들을 유심히 본다. 화면을 녹화하거나 노션에 주소를 저장해둔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그것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전에는 요리 방법에 대한 영상이 나오면 "하아~~~"라는 한숨이 먼저 나왔는데, 지금은 "오호~~"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그리고 양파나 대파, 당근, 마늘 같은 자주 사용되는 식재료를 보관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그것들을 잘 보관해둔다. 전에는 남는 재료는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 대부분 상하게 되어서 버렸었다.  


그저께  비빔 수제비를 만들고 있을 때, 아내가 들어왔다. 그동안 요리를 했던 사진을 보기만 했었는데, 요리를 하는 모습을 직접 본 아내는 무척 뿌듯해했다.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 요리 때문에 미치겠네"라고 생각하던 헤세가 "내일은 어떤 요리를 해볼까?" 라던가 "얘들아 어떤 거 해줄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참 귀신이 곡할 일이요. 강산이 세 번은 변할 일이다. 그에게 이런 변화를 준 것은 캠핑에서 맞이한 그 한 끼의 요리 나눔 때문이다. 요리를 즐기는 헤세라니. 멋지다.


계란밥치즈, 계란말이, 김치전, 닭볶음탕, 돼지고기조림, 감자채볶음, 고구마맛탕, 계란찜, 비빔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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