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3권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였다. 으악, 갑자기 난이도가 확 높아진 느낌. 눈은 악보를 따라가지 못하고, 손은 눈을 따라가지 못하니 총체적 난국이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소리로 만들어진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대체 계속해야 되나?'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냥 재밌으니깐, 내가 즐거우면 되니깐'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왔는데, 그런 생각만으로는 부족한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얼마 전에 지인이 말하길 "선생님, 바이올린 하는 거 보면 정말 악기는 어려서부터 시켜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라고 말했다. 즐겁게 하는 것도 알고, 열심히 하는 것도 아는데,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으니 그렇게 말을 한 듯하다. 들이는 공은 보통이 아닌데 실력은 제자리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계이름을 버벅대고, 박자감각은 제 맘대로다. 사실 이런 것은 어릴 때 배웠으면 정말 좋았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담을 쌓아두었으니. 음악에 대한 두려움이 벽을 높게 만들었고, 긴 세월이 벽을 두껍게 만들었다. 음치, 박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놀림 속에 그 벽은 점점 더 견고하게 튼튼하게 다져졌다. 바이올린을 만나서 그 벽을 넘어서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바이올린으로 아주 작은 구멍을 뚫었고, 그 구멍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에 상황에서 더 이상은 커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벽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 "꾸준히, 어찌 되었든 계속하기"그것을 계속했다. 잘 안 되면 안 되는대로, 계속 활을 그었다. 특히 각 현마다 활긋기를 100번씩, 시간이 없으면 10번씩이라도 계속했다. 매번 할 때마다 '아휴, 왜 안 되냐?', '정말 안되나 보다', '이건 넘을 수 없나 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이 들 때도 활은 계속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지난 월요일(9월 26일) 문득 "어, 소리가 좋아졌는데"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리가 깨끗해진 듯한, 망설임이 사라진 듯한, 떨림이 사라진 듯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내 바이올린 소리 맞나?"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날 레슨을 받을 때 선생님이 말하길
"어, 소리가 정말 좋아지셨어요."라고.
자신감이 생겼다. 며칠 동안 연습을 하는데, 아직 다른 현을 건드려서 겹치는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소리가 너무 좋다. 내 착각인 듯싶어서 선생님께 실력이 늘어난 것 같다는 톡을 보냈더니, 선생님이 꾸준히 실력이 늘고 있다고 말해주셨다. 그래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3 포지션도 해야 하고, 비브라토도 해야 하고, 음도 정확하게 짚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포기하고 싶을 때, 그것을 이겨내고 계속 연주를 했더니 내가 느꼈던 벽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지금은 3 포지션과 비브라토가 또 다른 벽이지만, 이 역시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넘어서겠지. 누군가 그랬다. 연습은 완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향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또 누군가는 그랬다.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