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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Dec 19. 2022

불 켜진 집

헛개잡상인, #20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다 말고 시계를 올려다본다. 밤 12시 5분. 씁쓸하다. 아니 쓸쓸한 건가? 아침부터 밤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직원 대상 교육 자료를 만들었다. 눈은 침침하고 가뜩이나 약한 허리도 뻐근하다. 그대로 침대로 쓰러지려는 찰나, 문득 강렬한 강렬한 감정이 솟구쳤다.


오늘은 써야겠다.


요 며칠 야근을 하는 날이면 빈 집에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그동안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아내가 항상 불을 켜 두고 새벽 시장으로 나섰다는 것을. 고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올 나를 위해 말이다. 내 인생의 등대 같은 여자.


덕분에 더듬거리며 거실 불을 켜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 나가 한밤중에나 들어오는 집사를 반기는 고양이들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빛과 볕은 다르다던데 오늘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밝으니 따뜻했다.


문득 아내의 잔소리가 떠오른다. 집에 와서 과자 같은 거로 식사 대충 때우지 말고 제대로 챙겨 먹어. 하지만 싱크대 한 편에 수북이 쌓여 있는 과자와 온갖 간식들. 어허 이거 참. 언행불일치.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욕부터 떨어지는 나 때문에 사 둔 게 분명했다. 


사람은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던데 아내의 말과 행동에 모순은 없었다. 하나는 사랑에서 비롯된 말이고, 하나는 사랑에서 비롯된 표현이니 말이다. 문득 아내가 보고 싶은 밤이다. 아내를 기다리는 고양이들만큼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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