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개잡상인, #21
어쭙잖게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나에게 '보존' 또는 '보유'의 가치를 심하게 고민하게 했던 물건이 있다. 그 물건은 다름아닌 우리 형제의 곁을 일찍 떠난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 테이프. 시디롬조차 보기 어려운 요즘이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그 옛날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일단 '보관'하기는 잘했다. 비디오를 재생 가능한 파일로 변환해 주는 업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혼자 보기는 아까웠다. 이제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동생에게도 영상을 보낸다. 보겠다는 말뿐, 어쩐 일인지 감상평이 없다.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 여러 마음이 들겠지. 나도 지금 그러니까. 동생도 나처럼 술을 한 잔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 시절의 아빠처럼 무릎 위에 아들을 앉혀 두고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들, 할아버지랑 할머니야. 음... 그리고."
영상 속 부모님은 우리보다 젊었고 80년대 영화에서나 보던 서울말을 쓰고 있었다. 부산이 고향인 엄마조차 말이다. 그 누가 서울말에 억양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그 시절은 달랐다. 악센트엔 리듬과 운율이 있었고 표현은 시적이었다. 폐백을 올리는 아빠의 모습은 장난스러웠고 엄마는 수줍었다.
청승맞게 울지는 않았다. 실은 눈물이 찔끔 나오려다 말았다. 반가운 모습에 잇몸이 만개한 내 자신을 보고 이건 슬픔이 아니라 그리움이라 정의해 보았다. 무언의 감상평. 감상평이 없는 것이 감상평이다. 우리 가족의 옛 이야기를 보며 단지 드렁큰타이거의 '엄지손가락'이라는 노래 하나가 떠올랐을 뿐이다.
"아버지의 엄지손가락이 내 손바닥만 할 때가 엊그제 같더니 아니 벌써 이곳 멀리 아주 먼 거리를 걸어 어느새 난 여기까지 오게 됐지" - 드렁큰타이거 '엄지손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