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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Jan 22. 2024

<드로잉을 합시댜>

그라운드 시소 서촌 - 문도 멘도 : 판타스틱 시티 라이프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내 말이 진리야! 내 말을 꼭 들어야 해!!! 라고 하면 듣고 싶은 마음이 35% 정도 된다. 그런데 내 책상 위에 살포시 두고 간, 일기장 같은 게 놓여 있다고 생각해 보자. 괜스레 들춰보고 싶은.. (관음증인가..) 마음이 8-90%는 든다.


나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가감 없이 담겨 있는 드로잉이 좋다. 전시를 볼 때 습작이 나오거나 작가 노트가 나오면 빨려 들어간다. 때로 아주 유명한 작품보다도 작가의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간 글이나 그림이 훨씬 흥미롭다. 김환기 전시에서의 일기, 습작이나 물건을 아카이빙 해놓았던 곳, 안도 타다오의 전시에서 안도의 드로잉과 같은 것 말이다. 그 사람, 그리고 작업의 과정을 좀 더 내밀하게 알아간다는 희열감이 있다.


최근에 서촌 그라운드 시소에 다녀왔다. 일러스트레이터 문도멘도의 전시인데, 인스타그램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난 안 가봐야겠다’ 를 고수했다. 그러다 네이버 티켓 할인 가격이 9,900원을 발견하고, 끝나기 전에 냉큼 다녀왔다. 안 갔으면 후회할 뻔.

1960 스페인 출신, 그래픽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를 거쳐 일본에서 결혼하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전시에서 모든 걸 그림으로 그리려는 열정을 보았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동경하게 된다. 그 열기가 옮겨오는 것 같다. 특히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중요한 건 내가 그릴 수 있는 것과 아는 것을 모아둔 방대한 라이브러리가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정말 도서관처럼 디스플레이해둔 공간이 가장 강렬했다. 재료, 에세이, 동물, 자화상, 초상, 포즈로 섹션을 구분하고 그 안에 작가의 스케치와 에세이를 배치했다.

역시 꾸준하게 다작하고, 다상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의 작품은 좋을 수 밖에 없다.


힘을 뺀 드로잉

그림을 그릴 때 흰 도화지 앞에서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공포감이 밀려오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잘 해야겠다는 압박감과  이 작품에 내 혼신을 쏟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나를 괴롭게 만든다. (사실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니 빈 화면이 ‘뭐야 왜 시작 안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 그 작가를 판단할 수 없으며, 작가의 모든 면을 다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가볍게 시작을 해보자.


‘모든 독자는 책을 읽을 때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했다.

전시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상황과 빗대어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나, 그리고 나와 연결된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드로잉 에서도 찾아봐야지. 오늘부터 일정 시간을 떼어 끄적끄적 그려야겠다.

그래서 남겨놓는 오늘의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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