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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14. 2023

근데 우린 강아지가 없으니까 나만 산책시켜 주면 돼

심각한 대화 속 예상 못한 웃음 폭탄

남편: 요 앞 공원에서 개물림 사고가 있었대

아내: 응? 어쩌다가?

남편: 강아지 동호회 사람들이 대여섯 명 모여서 공원에 산책시키러 나왔나 봐. 근데 목줄을 안 매고 나온 개가 있었던 거지. 그 개가 산책하던 다른 개한테 달려들어서 물었다네

아내: 산책을 시키려면 당연히 목줄을 하고 나가야지 참...

남편: 그러니까. 피해 견주는 고개만 까딱 하고 가는 가해 견주를 불러 세워서 뭐라고 했나 봐. 그러니까 동호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별 일도 아닌 걸로 일 크게 키운다고 하면서 단체로 뭐라고 하더래. 그걸 옆에서 지켜본 목격자가 제발 강아지 산책시킬 때는 목줄 좀 채우고 나오라고 호소문을 어디에 적어서 올렸나 봐.

아내: 양심 없는 사람들이 참 많네.

아들: 근데 우린 강아지가 없으니까 나만 산책시켜 주면 돼.

 

집 앞 공원에서 벌어진 고삐 풀린 강아지와 강아지 주인들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던 우리 부부는 아들의 말에 그만 빵 터져버렸다. 산책을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주말에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이 기억이 난 모양인지, 본인이나 산책시켜 달라는 아이의 말에 순간 웃음이 터져 한참을 그렇게 바닥에 드러누워 웃었다. 공공질서와 사회적 매너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도 있는 좋은 대화 소재였지만 아이의 말에 그저 킬킬대며 웃느라 "뭐라고?"만 아이에게 연발할 뿐이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나만 산책시켜 주면 된다고" 아이는 귀찮다는 듯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재차 산책시켜 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산책을 시켜달라는 아이의 말이 우습고 귀여워 또 한참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이가 순수하게 드러내는 욕망이 온전히 나에 의해 이뤄지거나 좌절될 수 있다는 사실에 효능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낀다. 아이 입장에서 부모는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이자 욕망을 좌절시키는 못된 도깨비가 될 수 있는 변신의 귀재인 셈이다.


요정을 자처하는 부모는 도깨비가 되기 어려워하고 도깨비가 된 부모는 요정으로 분하기 어려워한다. 요정과 도깨비 사이를 지혜롭게 오가는 부모가 되어야 하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나무라는 일도 어렵고 아무리 봐도 잘난 구석 하나 없는 아이를 치켜세워주기도 어렵다. 그렇게 세상의 금쪽이들은 탄생한다. 예쁜 자식을 혼내는 일도, 예쁘지 않은 자식을 칭찬하는 일도 모두 같은 사랑임을 받아들인다면 자식 앞에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부모가 조금은 줄어들게 될까. 어쩌면 자식을 위한 이런저런 고민들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터뜨리는 웃음을 통해 거의 대부분 해결되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고민은 내던져두고 아이와 함께 마음껏 웃자. 그것은 최고의 교육이자 최선의 훈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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