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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12. 2023

행복 목욕탕

성장하는 이, 성장시키는 이

결말이 기괴하고 몇몇 공감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으나 영화 전반에 흐르는 캐릭터들의 성장 과정에 몰입하게 된다. 버림받았거나 떠나버린 사람들이 주인공 후타바(미야자와 리에)를 연결고리 삼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결말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실존하는 현대의 시대적 정서에 부합한다고도 볼 수 있다.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람, 언제나 남을 먼저 걱정하는 사람, 주인공 후타바는 그런 사람이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딸(아즈미)이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강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탐정을 고용해 1년 전 집 나간 남편을 찾아 수양딸(아유코)과 함께 집에 들어와 살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준다. 친모에게 버림받은 수양딸(아유코)을 기꺼이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두 딸과의 여행 중에 만난 히치하이커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목표 없이 방황하는 청춘의 삶을 위로한다. 자신이 친딸처럼 키운 아즈미의 친모를 찾아가 만남을 주선하고 언어장애가 있는 친모와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을 예견하며 오래전부터 딸(아즈미)에게 수화를 가르쳐 놓는다. 그렇게 주인공 후타바는 자기 주변의 인물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성장하게 되는가. 왜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성장하고 누군가는 성장하지 못하는가. 후타바의 도움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성장을 경험한다. 두 수양딸 아즈미와 아유코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남편 가즈히로는 책임감에 대하여, 방황하는 청년 타쿠미는 인생의 목표에 대해서, 아즈미의 친모(키미에)는 회개와 용서를, 탐정 타로는 진실을, 그렇게 그들은 제각각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혹은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극복하지 못하고 매번 좌절하고 말았던 자신의 한계 지점을 후타바라는 인물을 통해 극복해 나간다. 극복과 성장을 이끌어준 후타바에게 그들이 품는 공통된 감정은 감사와 미안함이다.


성장을 경험한 사람은 감사 미안함을 품게 된다. 스스로 성장하는 때도 있으나 성장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어떤 자극을 통해 촉진된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장이란 결국 감사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실현된다. 다시 말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미안해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영화에서처럼 어떤 이의 성장이 반드시 다른 이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순간 누군가의 성장을 돕기 위해 조력자가 기울이는 노력에는 일정량의 자기희생이 녹아있다. 자녀의 성장을 돕는 부모, 제자의 성장을 돕는 교사, 후배의 성장을 돕는 선배, 그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자원을 사용하여 성장시키고픈 누군가를 지원한다. 조력자들은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마음을 쓴다. 자신의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이 가진 자본을 소비하며, 자신이 가진 진실된 마음을 다해 조력자는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대상에게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한 노력 끝에서야 비로소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에 대해 결코 교만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 덕에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기안 84 : 내가 너를 동생이지만 존경하는 부분이 있어. 나는 네가 챔피언이 될 줄 알았어. 아니 그 정도로 먹고살 만 해졌는데 아직까지도 후배들 세컨드 다 뛰어주고 운동 도와주러 다니는 게 정말 대단해

정찬성 : 나 혼자 잘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잖아. 나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나도 후배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지.


유튜브를 보다가 기안 84와 정찬성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챔피언은 못되었지만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은퇴한 정찬성에게 기안 84는 돈을 얼마나 벌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정찬성은 자신은 이미 자기 가족들이 쓰기에는 충분할 만큼 돈을 벌었다며 돈보다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쏟고 싶다고 말한다. 성장해 본 사람, 그리고 그 성장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세상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람들 덕분이다. 자신의 성공이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것은 단순히 겸손 마케팅을 위한 가식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의 혜안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지향점은 언제나 나눔과 베풂이다. 영화의 주인공 후타바의 의지는 그렇게 남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또 다른 조력자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이였던 시절을 지나 시간이 흘러 성장시키는 이가 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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