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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20. 2023

아니 그게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

“뉴스 봤어? 묻지 마 범죄 너무 무섭다. 아무 이유가 없다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요즘이 어떤 시댄데 아파트가 무너지냐... 무량판 구조가 문제라던데”

 “아니! 그게 아니라”     


 “너 학교 다닐 때 OO이 기억나? 이번에 사업 대박 났다던데”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떤 대화를 하던 중간에 “그게 아니라”고 말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끊는 사람이 있다. 그게 아니라길래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가만히 들어보면 디테일을 바꿨을 뿐 앞서 상대방이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하여 말할 때가 많다. 같은 이야기를 할 거면서 그들은 왜 “아니 그게 아니라!”고 강력히 상대방의 말을 제지하며 중간에 끼어드는 것일까.    

  

 이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은 모두 틀렸고 내 말만 바르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 상대방이 한 말과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이 내 입을 통해 나와야만 기어코 직성이 풀리는 마음, 타인을 향해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은 마음, 이는 모두 관심받고 싶은 마음,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다. 이런 마음은 어린아이들이나 품을 법하다고 생각되지만, 실상은 거꾸로인 경우가 많다. 나이가 어린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오히려 이 말을 내뱉는 것을 목격할 때가 더 많다. 그렇다면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들이 왜 그렇게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며, 남들의 관심을 못 받아서 안달이 난 것일까.      


 그것은 아마 자기 존재를 진정으로 인정받아 본 경험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가족, 친구, 동료, 지인들로부터 충분한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살아온 노신사들은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도 영향력을 전할 수 있으며 남의 이야기에 끼어들거나 동어반복으로 불필요한 반박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 생각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각이 소실, 혹은 감퇴하여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목소리가 큰 노인은 대체로 말이 안 통할 확률이 높다. 그들은 모든 대화를 “아니 그게 아니라”로 시작하며 일단 상대방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무슨 말이 나온 들 상대방은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아이들 역시 같은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아니 그게 아니라~”를 외칠 때가 많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그 평가는 아이의 마음에 예리하게 꽂힌다. 자신이 수긍할 만한 평가의 말을 들었을 때 아이들은 침묵한다. 일단 부정하고 시작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에겐 아직 솔직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평가를 받았을 때 아이들은 억울한 마음을 가득 담아 “아니 그게 아니라~”를 외친다. 이때 그들의 호소는 절규에 가깝다. 억울한 마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분노의 정점으로 사람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소년과 노년을 구분 지어 이야기를 풀어보았지만, 사실 그 둘 사이의 경계가 의미 없을 때도 많다. 막무가내인 아이도 있고 억울함이 가득한 노년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귀 기울여 가만히 잘 들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억울한 이의 절절한 호소인지, 인정을 갈구하는 무대뽀 같은 투쟁방식인지 알아낸 뒤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만약 후자라면 건강한 대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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