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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14. 2022

결혼을 언제 해야 되느냐는 말

무의미한 질문을 멈추기 위해 해야 할 일

사오 년 전, 한창 주변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우르르 몰려서 결혼을 하던 시절에 대화의 주제로 참 많이 오르내리던 말이 있다. "결혼하면 뭐가 좋은가" 그리고 "결혼을 언제쯤 하는 것이 좋을까."


당시에는 모이기만 하면 서로의 경험담, 혹은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서로에게 전하며 결혼이 왜 좋은지, 어떤 점에서 불편한지 의견을 나눴다. 한데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기에 양쪽의 가능성을 고루 살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결혼 이야기에 있어서 극단성을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무조건 좋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결혼을 해서 모든 것이 무조건 좋다는 식이다. "안정감이 생기고, 아이가 주는 기쁨이 있으며, 자산 증식에도 도움이 되고, 마음 놓고 직장동료를 함께 흉볼 사람이 생기며 그것은 곧 무조건적인 내 편이 생긴다는 뜻이며..." 등의 이유로 자신은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타인에게도 무조건 추천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무조건 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이제 피곤해서 혼자 있고 싶은데 여자 친구가 집으로 가지 않고, 집안의 대소사가 두 배로 늘어났으며,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인데 결혼을 했더니 아이를 낳으라는 압박에 오히려 결혼 전보다 스트레스가 늘었고, 취미생활을 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인간관계가 협소해졌으며..." 등의 이유를 들어 결혼에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인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대부분 자기 결정권을 침해받는다는 것으로 수렴됨을 알 수 있다.


결국 결혼의 장단점을 요약해보자면 장점은 든든함이요 단점은 자유의 박탈이다. 왜 든든해지는지, 무엇이 그토록 자유를 침해하는지 다채로운 사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를 적게 남길 수 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한쪽 면만 바라보며 결정지으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것은 한쪽 눈을 감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제대로 초점을 맞추기 힘들어 금세 위태로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철학을 공부하면 진리에 도달해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 전심을 다해 공부하고 운 것을 삶으로 실천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리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배우기만 하고 배움을 삶으로 실천해내지 못할 경우 오히려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괴감과 자책감이 더 커지게 된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과 함께 자기 비하의 소용돌이에 빠질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양면성을 미리 알려주는 자가 좋은 스승인 셈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장점과 단점에 대해 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치우 없이 그 둘을 함께 말해주는 사람이 좋은 인생 선배다. 한쪽 측면만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람은 삶의 다양성을 간과하는 사람이다. 다양성을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집에 빠지기 쉽다.


결혼을 언제 하는 것이 좋냐는 질문은 더욱 나쁜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별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언제 해야 좋을지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서른에 하면 좋을 것인가 서른다섯에 하면 좋을 것인가, 서른일곱은 어떻고 마흔은 또 어떤가. 그게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기준을 나이 말고 다른 것으로 잡으면 조금 더 나은 대답이 될까? 가령 '취업을 한 뒤' 라던가 '아이가 예뻐 보일 때' 같은 이야기들. 하지만 이런 대답들 역시 별다른 소득을 올리기 어렵다. 너무 막연해 기약이 없어 보이거나 너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언제 해야 좋을지를 묻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사항은 나를 아는 것이다. '나를 안다'라는 말은 참 고리타분해 보인다. 책에서나 나올 법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익숙한 말일 때가 많다. 나를 알지 못하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맞는 사람인지 판단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은 없으며 맞춰가는 것이 곧 결혼이라고는 하지만 쪼개진 퍼즐을 맞추는 것과 나무를 갈아 직접 퍼즐을 만들어 맞추는 일은 엄연히 다른 수준의 수행이 필요하다.


것은 비단 결혼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직업 선택이나 사람 사귐에 있어서도 나를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주변에 휘둘려 못된 선택을 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퇴사 이야기가 봇물을 이루는 출판시장의 트렌드만 보더라도 자신을 알기 위한 여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잘못된 선택이 남기는 리스크는 커진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이상향인 행복 근처에 가 닿기 위해서 나를 알기 위한 작업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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