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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21. 2023

순수의 시대

언제나 늘 그래왔듯이

순수의 시대란 과연 어떤 시대를 뜻하는 것일까. 제목이 뜻하는 순수의 의미는 순진무구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관습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폐쇄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삶, 그러한 삶을 추종토록 만드는 강력한 규율과 보수적인 문화에 둘러싸인 모습을 '순수'라는 말로 포장한다. 영화와 원작인 책의 배경은 그런 종류의 순수함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강력하게 지배했던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의 삶을 배경으로 그린다.


주인공 아처는 전형적인 상류층 남자다.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상류 사회에 필요한 일원이 되고 온갖 고급 취향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오락과 유희를 탐하면서도 절제할 줄 아는 모습. 그렇게 그는 기품 있고 균형 잡힌 귀족적 삶을 향유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과 대등한 수준의 가문인 밍고트 가의 메이와 약혼을 하여 결혼을 앞두고 있다. 메이 또한 전형적인 상류층 여자다. 결혼 날자를 정하는 일에도 관습에 따라 약혼 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함을 주장할 정도로 관습과 규율을 중요시하며 오직 남자에게 사랑받는 것이 일생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다양한 사교 능력을 연마한다. 메이와 아처는 관습과 규율로 둘러싸인 상류 사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배필이었다.


그런 둘 사이에 메이의 친척 엘렌이 등장한다. 엘렌 역시 귀족 가문의 여성이지만 유럽의 귀족 남자와 이혼을 준비하며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엘렌은 전 남편으로부터, 가십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가식적인 상류사회의 인간관계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갈망한다.  당시에는 이혼한 여성에 대한 평가가 지금에 비해 훨씬 가혹했다. 우리나라만 생각해 보더라도 2000년대에 이혼녀, 홀아비 등의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이혼에 대한 인식이 현재와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이혼을 준비하며 뉴욕 사교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엘렌을 곁에서 도우며 아처는 그녀의 솔직함과 당당함에 매료된다. 그렇게 관습에 순응하는 줄도 모른 채 순응하는 자(메이), 저항하는 자(엘렌), 저항하고 싶지만 결국 순응하는 자(아처) 셋 사이에 형성되는 로맨스가 이야기의 주요 흐름이다.


관습을 유지시키는 동력은 체면과 가식이다. 예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 왜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들 살아왔던 것, 우리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기품과 품위를 떠올리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들은 체면치레와 가식에 숨이 막히게 된다. 물론 관습을 유지하고 지켜냄으로써 이식받게 되는 수혜를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관습을 박차고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진 게 많은 사람,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답답함에 몸부림치면서도 결국 그 혜택을 버리기 두려워 서서히 질식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아처를 통해 그런 삶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관습은 권태를 낳고 권태는 열망을 갈구한다. 귀족 가문의 여식, 손가락에 굳은살 하나 없어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녀의 손을 본떠 조각을 빚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그 어떤 스캔들도 없이 살아온 정숙한 태도와 상류사회의 사교 스킬을 두루 갖춘 인물, 아처에게 메이는 자신이 바래 마지않는 모든 것을 갖춘 여자이자 관습과 권태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처에게 엘렌은 열정의 화신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참고 살지 않는 여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사람, 관습과 규율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 남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삶의 자세, 그야말로 관습과 권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닌가. 아처가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엘렌을 연기한 미셸 파이퍼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련하고 나른한 그녀의 목소리는 시원스럽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대비되며 강인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동시에 실현한다.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한 없이 순수해지는 그녀를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관습에 먼저 저항해 본 그녀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단 둘이 도망치자는 낭만적이지만 철부지 같은 소리를 하는 아처에게 "당신은 그럴 수 없다"며 현실을 바라보도록 한다. 엘렌은 규율과 관습에 먼저 저항해 본 사람으로서 사회와 타인의 압력을 고스란히 경험해 본 바 있다. 어쩌면 엘렌의 용감하고 대담한 행동 역시 순수함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엘렌의 순수함(용기)이 순수의 시대(규율에 순응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뛰어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데에 있다. 아처와 엘렌 사이를 알아차린 뉴욕 사교계 인물들의 훼방에 둘은 만남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아처는 결국 메이를 선택하게 되고 엘렌은 떠난다. 메이 역시 아처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지만 규율과 관습에 따르는 아처에게 평생 감사한 마음을 품고 모르는 척 살아간다.  


통속적이고 흔해빠진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디테일에 있다. 세 명의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끝없이 절제하는 모습은 모든 감각과 감정을 즉각적으로 분출하지 못해 모두가 안달인 현시대와 대립되는 이미지를 획득하며 일종의 고상함과 아련함을 동시에 가져간다. 보편적이지만 천박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이지만 저 먼 곳의 이야기인 것 같은 느낌은 고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매력이다. 영화는 주제와 소재를 뛰어넘는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시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고증을 거쳐 빚어낸 여러 장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탄을 내뱉게 만든다. 식사 예절, 음식 조리법, 의복, 풍경, 다양한 색감의 꽃과 그림들, 시가를 커팅하는 모습, 뮤지컬을 관람하는 모습, 대저택의 인테리어 등 부르주아의 삶을 간접체험토록 하여 미적 쾌감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절제되어 있지만 강렬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력 또한 영화의 수준을 높인다.


어쩌면 순수의 시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자 영원히 반복될 전 인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가 되었건 그 시대가 요구하는 관습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민 없이 관습과 전통에 따르는 삶, 용감하게 관습에 저항하는 삶, 저항하고 싶지만 타협하는 삶. 우리는 그래서 순수의 시대를 관람하고 나면 어느 누군가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아처, 엘렌, 메이 셋 중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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