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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an 14. 2024

아빠 하늘나라에 가지 마

아이의 걱정

며칠 전 여동생의 결혼식을 치르고 오후에는 축구 교실을 다녀온 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며 우리 부부는 몸의 피로감을 느꼈다. 하루 마지막 일과인 침대에 누워 책 읽기를 수행하는 동안 아내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잠이 들었고 나는 마지막 책 한 권을 다 읽고 아이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 뒤 안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오분쯤 지났을까, 방문이 슬쩍 열리더니 아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인 채 "아빠 무서워 같이 자자"라고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간 셋이 잔 적은 있어도 나에게 먼저 둘이 자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탓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무섭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확인을 해야 했다.


아빠: 뭐가 무서웠어?

아들:....

아빠: 엄마가 옆에 있는데 뭐가 무서웠어?

아들:....

아빠: 엄마한테 말 걸고 만져봐도 아무 소리도 안 내고 움직이질 않았어?

아들: 응


어찌나 피곤했던지 평소와 다르게 아이의 말과 손짓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할 만큼 깊이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아이는 아마도 어렴풋이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 모양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반응과 그로 인한 소외감 혹은 단절감, 아이는 그렇게 새로운 감정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그리고 얼마 뒤 아이는 나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에 아이답지 않은 소원을 빌게 된다.


아빠: 어? 엘리베이터가 둘 다 올라가고 있네

아들: 둘 다 누르자

아빠: 그래 먼저 오는 걸 타고 나중에 오는 건 취소하는 거야~

아들: 응!

아빠: 우리 내기할까? 아빠는 오른쪽 엘리베이터가 먼저 올 것 같아

아들: 나는 왼쪽이 먼저 올 거 같아

아빠: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야

아들: 응!

(왼쪽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멈추고 화살표가 아래로 바뀌어 내려오기 시작했고 오른쪽 엘리베이터는 10층을 넘어 20층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아들: 으헤헤 내가 이기겠다!! 아빠가 졌다!!

아빠: 악! 그렇네 아빠가 졌네! 아들 소원이 뭐야?

아들: (잠시 생각하더니) 아빠 하늘나라에 가지 마


아이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제 여섯 살이 된 아이에게 삶과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랴, 아이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은 그저 무서운 이야기에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처럼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두려움이 섞인 대상에 불과하리라. 어렴풋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죽음이라는 관념이 인간에게 언젠가 닥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모양인지 아이는 가끔 사람은 왜 죽냐는 둥, 언제 죽냐는 둥, 백 살이 되면 죽느냐는 둥, 죽음에 관해 물어오곤 했다. 몇 살쯤 죽음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인지, 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의식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물어오는 질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여타의 개념에 대해 왜 그러느냐 물어올 때와 달리 죽음에 대한 아이의 질문이 쏟아질 때 나는 그 질문 무게에 압도돼버려 무엇이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가르쳐야 되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그 방법과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해 난감한 주제가 바로 "성"에 관한 질문인데 죽음 또한 그에 못지않게 난이도가 높아 어려움을 느끼는 주제다. 이에게는 자신의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부모의 죽음일 테다. 이는 자신의 생존에 가장 깊게 관여하고 있으며 자신이 기댈 부모라는 존재가 소멸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죽음이란 그저 나이를 많이 먹어야지만 겪게 되는 무서운 경험일 테다. 따라서 자신은 아직 어리기에 자신의 죽음보다는 부모의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죽음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갈 테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지나치게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단은 무조건 안정을 시키곤 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할 테지만 어린아이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면 철렁하게 내려앉는 마음 또한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리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성장해 있을 시기를 상상해 본다. 그때 즈음이면 더 이상 죽음을 입에 올려도 철렁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가까워진 죽음 앞에 더욱더 두려운 마음이 앞서게 될까. 어떤 시간의 삶을 살아가야 할지 점점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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