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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Feb 17. 2024

아빠 오늘은 목 안 아파?

세심한 눈으로 살아가는 일

아들: 아빠 오늘은 목 안 아파?

아빠: 응, 왜?

아들: 어제 목 아프다고 했잖아

아빠: 어제 약 먹었더니 오늘은 괜찮아졌네

아들: 그럼 책 읽어 줄 수 있어?


상대방의 상태 미처 살피지 못하고 다짜고짜 자기 할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은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을 분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눈치 없음이요, 후자는 갑질인 셈이다. 그리고 이 둘은 자신의 욕구 충족이 최우선 목표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행동 동기이겠지만 타인의 상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 부른다. 타인의 상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사람에게 우리는 적대감을 느낀다. 그만큼 말과 행동은 시의적절해야 한다.


인류의 성장과 유지를 위해 최전선에서 활용되는 언어는 그 범용성에 힘을 얻음과 동시에 인간사에 있어 전방위적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말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은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무례한 말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무례한 말을 뱉은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남을 상처 입히기 위해 의도 담아 쏘아낸 말이 있고, 의도 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이 그 언어와 결합되어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 의도가 있건 없건 언어의 발화와 수용 사이에는 반드시 맥락이 있고 의미는 반드시 맥락 안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그 맥락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나와 너 사이 보이지 않는 관계망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래서 촘하지 못한 관계일수록 오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넓을 수밖에 없다. 관계의 틈새에 정보의 공백이 자리 잡고 있는 탓이다. 촘촘한 관계라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다는 시간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양에 따라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섬세함에 달려있다.

 

섬세한 사람은 남의 말에 상처를 잘 입는다. 단순히 마음이 여리고 피해의식에 휩싸여 별 의미 없는 말을 제멋대로 해석해 혼자서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귀신같이 파악하고, 비언어적 표현을 느끼며 발화자의 언어가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와 의도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는 탓이다. 그리하여 섬세한 사람들은 표현에 있어 조심스럽다. 그것은 서툴기 때문이 아니라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배려심의 발현이다.


아이는 "책 읽어줘, 책 읽어주라니까~"라며 생떼를 부릴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그보다는 어제 내가 목이 아팠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오늘은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나서야 "책 읽어줄 수 있어?"라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시도를 한다. 삶의 한 장면으로 한 인간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 일일 테지만 이런 순간이면 아이가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맥락 없이 막무가내 들이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하게 된다. 무례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세심한 시선과 배려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되려 내 목에 칼을 겨누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것이 분명 더 나은 방향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눈 감는 순간에 평온함을 담보해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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