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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ug 24. 2020

건강검진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나이

인생은 몇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을까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주변에 형이라고 부르던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에게 건강검진 잘 받아라,  내시경은 꼭 해라, 대장 내시경은 꼭 해봐라, 누가 암이 걸렸다더라, 이번에 운 좋게 용종을 제거하지 않았으면 암이 될뻔했다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제삼자가 아닌 직접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사례, 즉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거나, 질병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해 두 해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이래저래 살아오다 보니 어느 특정한 나잇대에 이르게 되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의 주제가 달라진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새로운 터널로의 진입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든 어떤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랑이나 우정, 취업과 불안한 미래, 결혼과 육아, 취미와 재테크, 이상과 현실, 건강과 죽음 등으로 그 형상을 바꾸어가며 우리 인생의 시곗바늘 속으로 스리슬쩍 스며들어온다.   

 

최근에 받았던 건강검진이
나에겐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기본 검진만 받았던 삼십 대 초반까지는 건강검진이란 예비군 훈련과도 같았다.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어야 해서 귀찮긴 하지만 크게 부담은 되지 않는 번거로운 숙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건강검진을 받은 이후로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아버지는 일의 특성상 집에 계신 날이 많지 않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고 원체 무뚝뚝한 분이라 본인의 이야기는커녕 이야기 자체를 잘 늘어놓지 않는다. 상의도 하지 않고 혼자 결정해서 사업을 벌여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여러 차례 들어왔으니 그간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는데 당뇨를 진단받고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 모두 최근에서야 알게 되면서 그 과묵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연히 죽음의 근처를 지나치게 될 때마다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어떨까. 어떤 감정과 기분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당뇨가 곧 죽음과 연관되는 단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생각보다 슬프다는 감정은 크지 않았다. 다만 타지에서 혼자 일을 하며 틈틈이 인슐린 주사를 맞아왔을 모습을 생각하니,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답도 없는 생각이나 하게 되었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상황이 사춘기 어린아이처럼 짜증스럽게만 느껴졌다.


시간을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어차피 받으러 가는 김에 어머니도 함께 모시고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 모시고 갔다는 말이 겸연쩍게도, 함께 갔지만 검사 내용이 달라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한 뒤부터는 끝날 때까지 각자 돌아다니게 되었다. 오전 내내 이런저런 검진을 받고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것도 잠시, 며칠  어머니 역시도 당뇨 판정과 장기에 작은 혹이 의심스럽다며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받았다. 나 역시도 대장에 조그마한 용종이 몇 개 발견되어 용종을 떼어냈다.


암과 같이 죽음에 근접한 결과를 받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의 당뇨 판정과 나의 용종 제거는 앞에서 말한, 삶의 어느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터널이구나

터널은 어둡다. 삶의 구간 구간마다 경험하게 되는 이 터널들은 잠시 눈을 어둡게 하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존재하고 그 끝에는 환한 빛이 눈부시도록 우리를 반겨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너무도 눈부셔 눈을 뜰 수 없는 빛이라기보다는 물가에 부서져 빛나는 보석 같은 물비늘 같이 은은하게 비춰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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