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호 Sep 04. 2020

책을 주고받는 일

좋은 것을 함께하고 싶다는 선의의 고백

누군가로부터 책을 선물 받는다는 것은 말썽을 부린 아이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아주 드물고 희귀하게 발생하는 현상인만큼 감사한 마음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어떤 이는 결국 냄비 받침으로나 사용하게 될 종이뭉치를 왜 선물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선물 받은 책을 곧장 발견하기 힘든 어딘가에 방치해둘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냄비 받침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용도로 그 쓰임을 다할 것이 자명하다.  


책을 선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물한 책이 그렇게 다루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책을 선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본인이 읽었던 책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그저 그런 책을 선물하는 경우는 없다. 분명히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책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때때로
사람에게 그러하듯 책에게도 반하곤 한다.


그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시각을 얻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의 언어로는 결코 표현해 낼 수 없는 유려한 문장에 반하여 두고두고 읽으며 나의 언어로 소화해내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과정이 너무도 논리적이고 매끄러워 지식을 구조화하는 알고리즘을 본받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는 등 독자에 따라 다양하면서도 분명한 이유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한 개인이 자신이 얻은 것들을 타인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은 곧, 삶의 일정 부분을 공유하고 연결하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해봐도 좋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의미로 책을 선물하기에 책을 선물 받았을 때에도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곤 한다. 그래서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당신도 나와 같이 이 좋은 것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는 선한 마음을 책과 함께 건네는 행위와도 같다.


하지만 이런 선한 의도가
책을 선물받는 사람에게
매번 오롯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받는 사람이 책을 건넨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줄 알아야 이 희극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비록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아 켜켜이 먼지가 쌓여 집안 어디엔가 짐처럼 취급될 것이 뻔히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선물해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한번쯤은 그가 왜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었는지 헤아리려 노력해 볼 필요가 있다.


책을 선물하는 사람은
책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


공감과 공유의 기쁨을 상상하며, 책을 선물 받는 사람이 책을 좋아한다고 판단했기에 책을 선물했겠지만, 사실은 선물 받은 사람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사람을 나 혼자 그려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선물하는 사람과 선물 받는 사람이 모두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때,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주고받은 책에 대해 서로가 의미 있는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될 때, 그들 사이에는 진정성이 녹아든 영혼의 교류 비슷한 것이 발생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행위임에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합이 맞는 순간, 우리는 짜릿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