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정해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
메모장은 요긴하다. 모두가 각자의 메모장을 가지고 살고 있겠지. 별 쓸데없는 것부터 엄청 중요한 내용들까지 모두 메모장에 적어둔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 마음이 힘들 때 털어놓는 감정 쓰레기통, 소소한 정보들, 대화 나눴을 때 감명 깊었던 내용 등등.. 종이에 적어두면 참 좋겠지만, 찾아서 꺼내보는 일이 내겐 잘 안 되는 것 중 하나라 모바일을 주로 이용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뭐라도 쓰자! 하면 정리가 안 되는 게 생각이라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띄엄띄엄 적어두고 살을 붙여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메모하기 시작한 건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 자주 기억을 못 했거나, 가끔은 내 기억력을 너무 믿어 다 날아가버렸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메모는 필수였다. 처음은 아이디나 비밀번호 같은 것, 잊어버리면 안 되는 일정이나 중요한 일들을 적어뒀고 시간이 지날수록 읽었던 책, 잊고 싶지 않은 감정, 불편한 마음 등을 꺼내놓는 일기장이 되었다.
일기장으로 쓰다 보니 가끔은 내 메모장을 누가 보고 있으면 어떡하지? 내 휴대폰이 털리면 어떡하지? 같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나의 일부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공유메모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누고 싶은 글이 있다면 나눠보기도 하고, 내 메모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메모장을 대놓고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했다. 나와 같은 기종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친구들 중 관심이 있는 친구와 공유 메모를 하게 됐다.
공유 메모는 이메일과 편지를 쓰는 것처럼 여러 번 들여다보고 신중히 생각하며 쓰게 됐다. 내 생각을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쓰려면 더 노력해야 했다. 혼자만 쓰는 메모장이 아니니까. 그래서 자주 남기지는 못하지만, 남길 때마다 어떤 일들이나 생각을 곱씹고 남겨볼 수 있어 배로 좋았다. 친구의 글을 보는 것도 좋았다. 생각지도 못한 다정한 글을 만났을 때 얻는 행복함과 감동은 혼자서 메모장을 채웠을 때와 달랐다. 아 진정성 있는 한 사람의 메모가 정말 큰 힘이 되기도 하는구나. 이메일과 메신저가 아닌 투박한 형태로 남겨보는 상대에 대한 진심과 정성스러운 일상 공유. 어떤 자극 없이 온전히 글만 읽을 수 있는 형태기에 메모장이 주는 힘이 큰 것 같다. 친구와 생각을 나누며 얻었던 기분 좋은 메모는 "네가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그 자리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쓰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적어준 글이었다.
예전부터 내 꿈이 무엇이었을까 곱씹어보면,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다. 좋은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고, 불공평한 일들이 없길 바라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싶었다. 그게 어떤 자리에서든지 말이다. 그래서 진심을 알아봐 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메모가 선물 같았다.
메모는 나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타인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메모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자 행복이다.
2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