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정해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
닭발을 처음 먹어본 건 20대 초반이었다. 몇 살이었는지, 누구와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렇게 맵고 먹기 불편한 음식을 왜 먹는 거지?'라고 생각했고 함께 시킨 주먹밥만 깨작거리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10년 넘게 닭발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편견이 깨진 것은 바로 어제. 전에 일했던 직장 동료 친구들이 갖는 닭발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기존에 나였다면 거절했을 만남이었겠지만, 올해 들어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기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이 있었고 닭발도 그렇게 다시 한번 도전해 보게 됐다.
이번에 간 곳은 이태원에 있다가 약수로 옮기게 된 유명한 닭발집이었다. 이곳은 닭발과 오돌뼈, 소라숙회, 어묵탕 등을 팔고 있었고, 독특하게 김밥과 바지락 칼국수와 수제비를 판매했다. 내가 잘 먹을 수 있는 김밥과 칼국수가 있기에 닭발을 못 먹더라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함께 만나는 친구들 얼굴도 반갑고, 생맥주가 함께하는데 걱정이 될 게 무엇인가. 닭발은 순한 맛, 중간맛, 매운맛이 있었고 순한 맛과 숙주를 추가하고 김밥과 수제비, 생맥주를 시켰다.
기다리던 닭발이 나왔다. 순한 맛이라고 했는데 양념은 보기에 엄청 빨갛고 매운 느낌이 들었다. 함께 주문한 숙주를 위에 올려 숨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줄였다. 닭발을 거의 처음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는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입에 적당히 넣어 끊은 뒤, 오물오물 과일의 씨 바르듯 뼈를 발라내면 끝이 난다. 먹었을 때 든 생각은 '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그렇지만 굉장히 비효율 적이야'였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데 먹을 건 별로 없고 그런 것에 비하면 너무 비싼 음식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은 닭발을 마저 입에 넣고 뼈를 발라낸 뒤 숙주도 먹고 국물에 김밥도 찍어먹으니 입술이 살짝 얼얼하니 기분 좋게 매콤했다. 단무지를 한 입 넣어 입을 진정시킨 뒤, 맥주를 한 모금하고 두 번째 닭발을 들었다. 첫 번째보다 쉽게 뼈를 발라낼 수 있었다. 양념에 가려진 닭발의 독특한 식감(물컹한 것 같으면서도, 쫀득함도 살짝 있고 사르르 녹는다.)이 꽤나 먹을만했고 나를 데리고 온 닭발 선배들은 "못 먹을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먹어서 기쁘다! 이제 너도 닭발 모임에 참여해도 되겠어"라며 기뻐했다. 그렇게 몇 차례 더 먹고 나니 배가 차는 것이 신기했다. 내 인생에 처음 제대로 먹어 본 닭발은 성공이었다! 닭발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게 됐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도전은 내게 새로운 모임을 가져다주었다. 나이가 들 수록 내가 뭘 좋아하지 않는지 명확해지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굳이 해보려 하지 않는데, 그렇게 새로움이 내게 멀어질수록 삶이 무료해진다. 익숙함이 계속되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편안함이 주는 불안함은 나를 좀먹는다. 편안할 때 적당히 새로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어떤 계기들이 있다면 놓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비록 먹을 것 하나에 단순한 새로움을 느꼈지만, 나는 또 다른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다는 기회의 맛을 봤다.
새로움은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 낯선 모습 속에서 익숙함을 발견해 냈다면 나는 그렇게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성장했다.
2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