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두리e Aug 21. 2024

그날 밤 향냄새는

아빠의 사진

엄마는 마흔여섯, 나는 스물넷, 여동생은 스물둘, 남동생은 열아홉이었다. 늦은 봄날, 우리는 아빠를 차디찬 땅 속에 묻고 왔다. 엄마는 여동생과 내가 자는 방에 조그마한 상을 펴고 아빠의 사진을 비스듬히 올려놓았다. 사진의 파란색 뒷 배경은 굵은 뿔테 안경을 낀 아빠 얼굴을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제사 때처럼 오목한 접시에 모래를 깔고 향을 피웠다. 향은 자기를 태워 회색의 재를 만들며 허연 연기를 퍼 뜨리기 시작했다. 그 밤은 우리 방과 나란히 붙은 남동생방에서 잤다. 집에 있는 유일한 침대에서 여동생과 나는 몸을 꼭 붙이고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설핏 잠이 깼다. 여동생 몸에 깔린 오른쪽 팔을 빼내며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 찰나 코끝을 스치며 어떤 냄새가 훅 들어왔다. 향냄새였다. 아빠 영정 사진 앞 향냄새는 어느덧 집안을 잠식하고 있었다. 아빠의 영혼이 집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그 산속에 두고 온 아빠인데. 어째서? 밤은 고요했다. 머리맡 창문으로 비치는 거리의 가로등 불빛만 방안을 살짝 비추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옆방 문 손잡이를 스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곧 거실 마루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삐그덕 삐그덕. 향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갑자기 발 끝을 스치는 희미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 무언가의 존재는 팔을 지나쳐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건드리며  지나갔다. 온몸의 털이 화들짝 거리며 곤두섰다. 발끝에서부터 이어지는 한기가 몸을 덮쳤다. 눈을 뜨면 방문 앞에 아빠가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있는 힘껏 눈을 꾹 감으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확 끌어당겼다. 얼굴에 이불을 뒤집어썼는데도 향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집 안을 덮어버린 둥글고 무거운 향의 얼룩, 그 어두운 냄새. 


다음 날 아침, 향냄새는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옆 방으로 달려가서 아빠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앞에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사진을 안방 벽에 걸었다. 사진은 영혼까지 떠나버린 그 먼 곳에서 우리를 처연히 바라보는 것 같으면서도 머리 위에서 날카롭게 응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머리보다 한참 위에 걸려있는 아빠를 보기 위해 일부러 더 눈을 치켜떴다. 


그날 이후, 향냄새는 아빠의 냄새가 되었다. 때로는 퇴근해서 계단을 올라오는 아빠의 발걸음 소리 같은 환청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여전히 환후에 시달렸다. 이십 대 내 청춘을 곰삭힌 그 냄새는 죽음의 냄새였다. 냄새는 아빠의 기억보다 먼저 움직이고 그리움보다 더 짙게 혈관을 떠돌았다. 




1994년 사월, 아빠는 며칠 동안 몸이 안 좋아 일찍 귀가를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구급차에 이송되어 병원으로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빠는 잘 준비된 이별의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삶의 스트레스를 홀로 지니고 계셨던 것일까. 그저 제 놀기 바빴던 이십 대의 딸은 몸이 안 좋아 일찍 주무시는 것도 모른 채 늦게 귀가해도 잔소리를 듣지 않는 상황만 기뻐했다. 부녀 간에 술 한잔 기울이며 인생을 논해보기도 전에 아빠가 가 버렸다. 작별인사를 잘 해내지 못한 아빠가 원망스러웠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사진 속 아빠의 모습은 그래서 매번 무거웠는지 모른다.



엄마의 안방에는 벽면 한쪽에 아빠의 사진이 그대로 있다. 삼십 년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빠의 시선 맞은편에는 오래된 검은색 자개농이 있다. 까만 표면에 반짝이고 섬세한 장식이 돋보이는 그 장롱은 아빠의 허락 없이 저질러버린 엄마의 첫 작품이었다. 자개농과 자개화장대가 안방으로 들어온 날 우리 세 남매와 엄마는 아빠의 눈치를 얼마나 보았던지 모른다. 눈칫밥 먹던 큰 장롱은 아직도 안방 벽의 한쪽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삼십 년이 지났고 그 자개농도 그만큼의 세월을 견디며 방에 버티고 있다. 아빠는 긴 세월 동안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안방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친정 집에 갈 때마다 안방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가면 늘 거기에 아빠가 있다. 


“ 아빠 잘 지내? 우리는 다 잘 지내. 매년 늙어가고 있지만 말이야. 우리 얼굴이 많이 바뀌었지. 사진 속 아빠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졌어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