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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an 11. 2021

아름다운 인생맛, 타코야끼 팔아요.

위인은 나의 옆에 있다

순전히 마요네즈 때문이었다. 내가 말을 건넨 건.


한적한 아파트 앞 신호등 아래. 어느 날 빨강꼬마 푸드트럭이 찾아왔다. 마트 가는 길. 녀석을 살펴보았다.


녀석은 오래된 가죽 같은 빛바랜 빨간색이다. 몸집 작았다. 허리가 동그랗게 말렸다 일어나면 쭉 펴지는 할머니 등처럼 푸드트럭도 트렁크를 열며 기지개 켜듯 장사 준비를 했다.


작은 트럭의 겉면은 오랜 세월 비, 눈, 바람을 견뎌내느라 할머니 피부처럼 쭈글쭈글하게 보였다. 낡은 타코야끼 사진 여러 개가  있었는데 이것은 마치  '애미야. 나는 죽어도 이 집안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고오오오오조 할머니 사진처럼.. 여기저기 낡아 찢어져있기도 했다.


'다코야끼를 좋아하는지 어찌 아시고 이 외진 아파트까지 와주시는지.. 안 되겠다 출동!' 건너편에서 흘깃 봤을 때만 해도 절! 대! 사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신호등을 건너 푸드 트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장님~ 마요네즈 조금만 뿌려주세요. 살찔 것 같아서요"

"아이고 애기 엄마. 뺄게 뭐 있다고. 그냥 한번 먹어봐. 마요네즈도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사과도 갈아 넣었어"

"네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시는 사장님 앞에서 잠시 솟은 다욧의 기운도 기분 좋게 와르르 무너졌다. 곧 나의 입에서 사라질 사랑스러운 타코야끼들을 마냥 기다리기고 있기가 뭐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 눈을 내리까는 순간.. 사장님의 팔 안쪽에 선명한 화상 자국이 보였다.


덧소매에 가려진 양쪽 팔에 삐죽 나온 화상 자국이 우리 언니의 화상 자국과 비슷했다. '사장님도 목욕물에 데셨나? 우리 언니도 화상 자국 때문에 여름에도 반팔을 잘 안 입는데...' 눈빛이 0.1초 머무는 사이 사장님이 눈치채셨나 보다.


"집에 불이 나서 그래. 둘째를 낳고 100일 됐는데. 남편이 불을 질렀어. 바람피운 것도 부족해 술 먹고 깽판을 치더니... "

"어떡해요.. 어떡해요.. "  

"남편은 즉사했어. 집도 다 타고.. 그때부터 안 해본 장사가 없어요.  트럭이 우리 두 딸을 대학까지 보냈어."


눈물이 주르륵 났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는데 그건 들키지 않아 다행이다. 덤덤하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사장님 모습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스치듯 생각났다.


아들아 상황은 이러해도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이것이 제 이야기입니다. 제 아버지가 희생당하신 이야기. 그날 아버지는 저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이다.  주인공'귀도'는 사랑하는 아들 조슈아의 5번째 생일날 수용소로 간다. 매일 죽음과 삶의 언저리에서 살아도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사장님이 무덤덤하게.. 심지어 미소를 지으며 말하시는 그 찰나 같은 순간에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수용소에 가는 것을 게임이라 설명해주는 아빠 '귀도'
총살 당하러 가는 길에도 익살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따뜻한 아빠

 

Life is Beautiful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린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코야끼 사장님, 영화의 주인공 '귀도', 그리고 빅터 프랭클린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지금 필요한 건 삶을 보는 너의 관점이야'라고.. 말해주는 순간이었다.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준생 삶. 계속되는 실패. 경단녀. 재취업의 압박. 계형 시험 공부, '시작점이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었다.


You are Beautiful

찌그러진 차에서 다코야끼를 파는 사장님도, 흑수저를 물려준 아빠도,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 귀에 딱지가 돛게 말씀하신 우리 엄마도... 희생을 감행하는 부모의 노력모두 아름답다. 나는 사장님의 화상 자국이 아름답게 보였다. 신호등 아래서 빨강 트럭에 몸을 싣고 타코야끼를 파는 그분이 위대해 보였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자국, 움푹 들어간 트럭의 상처들은 마치 사장님 마음속에 있을 법한 멍 자국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나보다 덜 배워서, 덜 똑똑해서, 덜 힘들어서, 덜 예민해서, 그저 무덤덤해서 삶을 견뎌낸 것아닐 것이다.


부모님이 보여주신 일상의 모습이 따뜻한 것이었든, 무뚝뚝한 것이었든, 표현투르고 금 덜 살가웠라도..  자식을 위해.. 계를 위.. 하루루를 살아내는 그 모든 시간들은 사랑이다. 들은 위인이다.

아들에게 윙크를 보내는 귀도의 눈빛이 부모님의 마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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