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빠릿빠릿 못 따라 가는데.. 왜 자꾸 키는 쭉쭉 커대는지... 또래보다머리한통이 더 커 유치원 졸업사진을 봐도 내 머리만 엄청 솟아 있었다.
그건 다 아빠 때문이다. 아빠는 농촌계몽운동 시절에 엄청나게 유망했던 축산학과.. 그러니까 농대 출신인데.. 우유성애자셨다. 밥에다 우유를 붓고 고소하다며 먹으라 하셨는데.. 난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다. 중학교 때 '우유에 밥 말아먹는다' 말했다가 일순 정적이 흘렀고.. 헛구역질하는 친구도ㅠ있어 그 후로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아무튼,
아빠의 기대에 부응해 온갖 종류의 유제품을 충실히 흡수했더니 내 육신은 무럭무럭 자라줬다.. 그러나.. 뇌는..우유로는 절대 발달하지 않는 것인지..정말 정직하게도.. 덜떨어지고..엉뚱한 아이로 쑥쑥자랐다.
아빠는.. 내 뇌까지는 차마 고려하지 못하시고. 애 몸뚱이가 너무 크다며 며칠 고민하시더니.. 동사무소 직원을 봉봉 한 박스로 구워삶아 7살 때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아내셨다. 공부는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인데.. 아빠는 갑빠있는 내 덩치만 보신 거다.
일곱 살 때 나의 지적 수준은 이랬다..
1. 내 이름 석자를 읽고 썼다.
2. 빨간색 색연필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3. 그리고ㅠ아무것도ㅠ몰랐다.
게다가.. 독특한 학구열이 있으셨던 박옥순 여사(엄마)는 뜬금없이 전통있는 학교를 보내야 된다며 열변을 토하시더니..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되는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학교로 입학을 결정하셨다.
박옥순 여사는 몰랐던 거다. 전통있는 오~래된 학교는 마룻바닥이 삐그덕거리며, 화장실은 귀신이 나올 것 같았고, 과학실을 지나갈 때마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뼈다귀 해골바가지가 날 잡아먹을 것 같았다는 걸 말이다. 정말 그 학교는 어느 한 귀퉁이도 맘 둘 곳 없는.. 그런 곳이었다.
더군다나. 내 깜빡거리는 접촉불량 7살 두뇌는... 여기가 유치원인지.. 수용소인지.. 노는 데인지.. 공부하는 데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기행은 시작되었다.
1. 화장실이 무서워 바지에 오줌을 싸댔고
2. 선생님이 동네 언니쯤인 줄 알고 반말을 하기도 했으며
3. 선생님이 배고프다고 장난친걸 가지고..엄마한테 "선생님이 우리반 애들 먹을 간식을가져오랬어"라고 전달해.. 엄마가 새벽부터 반 전체 애들에게 나눠줄 식빵을 굽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밖에도..
4. 하굣길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면.. 돈이라곤 50원 차비 밖에 없고.. 에라 모르겠다. 차비로 20원짜리 불량식품을 사 먹어 버렸다. 이제 남은 돈은 30원 뿐이고.. 집에는 가야겠고.. 그냥 30원만 내고 버스를 탔다가 기사님께 딱 들켜 호되게 혼나고는 버스비 떼먹는 못된 습관을 고쳤다
5.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면 1번 버스를 타야 되는데...
예쁜 언니가ㅜ10번 버스를 타니.. 갑자기 그 언니와 친해지고 싶어.. 나도 10번 버스를 탔다. 그 언니를 따라 처음 보는 정류장에서 내리니..끝도 없이 펼쳐진논밭이 있다. ㅜ새우잡이 배에 팔려가지 않은 게 다행.. 울면서 걷다 보니 어쩌다 집에 오게 되었다.
수많은 덜떨어진 행동을 하며.. 학교라는 곳을 몇 달 다녀본 결과. 그래도여기가 유치원인지.. 수용소인지.. 노는 데인지.. 공부하는 데인지.. 역시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청나게 똑똑한
한 아이를 만났다.
주영이(가명)는 뭔가 달랐다. 수업시간에 멜빵 매달라고 선생님을 조르고, 받아쓰기 40점 맞는 나와는 다른... 뭔가 머리에 LED촉이 탑재된 듯한 영특한 아이였다. 그리고 세상살이를 많이 아는 그런 눈빛을 가진 친구였다.
주영이를 만난 건 운명이지 싶다. 큰 키 덕분에 맨 뒷줄에 앉은 우리는 짝꿍이 된 지 며칠 만에속마음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마치 신부님께 고백하듯.. 눈에 총기가 가득한 주영이에게 내 마음을 다 쏟아 놓았다.
뭔 소린지 도대체 못 알아먹겠는 이놈의 학교가 너무 재미 없다. 나는 너무 심심하다. 하루 종일 내가 하는 거라곤 치마 접었다 펴기 놀이, 실내화 벗었다 신었다 놀이, 햇빛으로 그림자 만들기 놀이, 연필 굴리기 놀이.. 뭐 이런 거다. 집이 굉장히 멀다. 집에 갈 때 배가 어마어마하게 고프다. 등등을 말하니..
영특한 주영이가..
"집에 갈 때 배가 고파? 그럼 내가 핫도그 공짜로 먹는 법 알려줄까?" 이러는 거다.
핫도그!! 대박!!
핫도그 가게라면 학교 후문에 있는 가게 중에서도 가장 핫한 곳!!손톱만 한 분홍 소시지가 뚱뚱한 밀가루 반죽으로 뒤 덮인!! 케첩과 설탕이 범벅 되어있는!!
그도끼만 한 핫도그!!
너무 먹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공짜로 먹는 거냐고 물으니.. 오늘 자기가 보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수업을 마치고핫도그 가게에 도착했다.
역시 가게 앞은 애들로 인산인해를.. 아주 개미떼마냥 바글바글 거렸다. 주영이는 인파 속으로 나를 데려가보여주었다.
1. '아저씨 핫도그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며 50원을 낸다. 2. 핫도그를 받는다. 3. '아저씨 50원 거슬러 주셔야죠'라며 50원을 다시 받는다.
늘 애들이 바글거리는 핫도그 가게에서만 가능한 기술이다. 고만고만한 애들이 서로 주라고 손을 뻣으니.. 핫도그 쟁탈전은.. 전쟁이 따로 없다. 사장님은 돈을 받을 때& 핫도그를 줄때도 애들 얼굴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던거다.
주영이는 공짜 핫도그를 손에 들고 나에게 말했다.
"너도 해봐"
내가 누구냐. 7살 답지 않은 등치로 갑빠있게 인파를 뚫고 실습해보았다.
학교를 입학한 이래로 이렇게 흥분되고 성공적인 학습의 시간은 없었다.
"친구야 고맙다"
길가에서 앉아핫도그를 먹었다.한참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니..마지막까지 아껴먹던 손톱만 한 분홍 소시지도 다 없어졌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다음날,우리는 또 핫도그 집에 가서 외식을 했다. 연달아 이틀을 성공하자 나는 확신에 찼다. 이제야 하굣길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었구나~ 이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문방구 앞에 진열된 불량식품들을 곁눈질로 지나치며..배고픔에 쩔어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집으로 오자, 이 기쁜 소식을 박옥순 여사께 고하였다. 완전 고급정보마냥.. 비밀 스럽게.. 귓속말로 말이다.
"엄마! 내가 핫도그 공짜로 먹는 방법 알려줄까?"
그런데 이게 웬일?! 엄마는 그때부터 바빠지셨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난리다.
"여보. 애가 뭐래는 줄 알아요? 아주 대도둑이 되겠어. 내일 당장 가게에 데리고가 핫도그 값 물러주고 오세요. 애가 잘못한 줄 모른다니까.."
다음날, 아빠와 나는 핫도그 가게에 찾아갔다. 나는 이틀간 핫도그를 공짜로 먹었다고 이실직고 했고.. 아빠는 주영이 몫까지 물러주신다며 500원을 사장님께 건네셨다.
그 후로 몇 달간.. 전통있는 그 초등학교를 조금 더 다닌 후 2학년 올라갈 때에 나는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왔다.
엄마는 전학을 오고나서야 주영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주영이는 할머니와 같이 산데. 할머니가 일하러 다니셔서..학교 끝나고 집에가면.. 애가 배가 고팠나 봐... 엄마가 너 배고픈 줄 모르고 괜히 학교를 멀리 보냈다. 주영이도 배가 안 고파야 될 건데.."
초딩생에게 생계란 무엇일까? 핫도그를 공짜로 먹는 방법을 주영이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아마 한동안 그 핫도그 가게를 관찰했을 터이고 사장님의 행동패턴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내가 실습한 날처럼 주영이도 처음엔 떨렸을 테지만 담은 커졌을 거다.
주영이의 또래 답지 않은 영특한 눈빛은.. 아마 내가 생계를 위해 노력했던 스무살의 세계를 일찍 알아버려 초롱초롱해진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