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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Oct 25. 2020

마흔이지만, 긴 머리는 하고 싶어.

정류장 2.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하나

 예쁘게 늙고 싶다. 죽을 때까지 고운 모습의 내가 되고 싶다.




자기 개발서를 즐겨 읽었다. 열정 가득한 삶이라 생각하며 나를 불태웠다.


이러다 요절하는 거 아니야? 할 정도로..  새벽에 일어나 연구대회를 준비고, 같은 해에 자격증 시험을 봤으며,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지 않고 한 발짝 더 가려 애썼다. 현재를 살지만..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는 아이러니한  았다.


딱 1년 만에 온 몸이 고장 신호를 보냈다.

서럽웠다.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오니 말이. 나이가 들면 서럽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겠다. 매해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6개월 또는 1년마다 추적검사 받으라는 항목이 늘고 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열심히 살았더라?

결국 행복이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던 거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잊어버렸다. 무엇 때문에 달렸는지. 왜 죽도록 일만 했는지.  


그래.. 삶은 유한한 거였어.

엄마도 아빠도 일찍 돌아가셨다.

빠는 49세. 엄마는 66세. 두 분의 유전자 충실히 받았다면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마음이 란해졌다.


내가 죽으면 남겨질 어린 두 토끼들을 위해, 쏠쏠한 사망보험을 알아보다가 어쩐지 서글퍼져 그만두었다. 보험을 들 바에야 영양제나 사 먹자 생각하며 이제껏 한 번도 안 챙겨 먹던 홍삼을 먹기 시작했다.


사실.. 이까지.. 내가 너무 오래 살까 봐.. 정을 했다. 99세까지 사신 할머니를 보며.. 삶은 고통의 자매품임을 꼈다. 찾아뵐 때마다 '죽어야지..'라고 말씀하셨고, 정말이지 슬퍼 보였다. 편, &며느리 앞세워 내고 모진 세월을  할머니는 행복과는 하시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질색팔색을 하며 '오래 살 일'을 피하곤 했다. 아이 둘을 낳고도 보약 한 채 지어먹지 않았다. 그 흔한 비타민 한 알. 제대로 챙겨 먹은 적이 없다. 홍삼을 먹으면 명줄이 빨리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고선 그때부터 홍삼은 아예 입에도 안 댔다. 죽을 때 깔끔하게 죽고 싶었기 때문이다.


명을 짧게 하려던 게 아닌데... 단지, 삶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한 죽음만은 홀가분하게 발로 뻥 차려던 것뿐인데.. 갑상선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재검 진단에 대상포진까지..


아직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두 딸이 있어 위기의식마저 느껴졌다. 죽음이 '드루와 드루와'를 외치며 문턱 앞에 서 있다니.. 휴... 나도 언젠가 죽겠구나 생각했지... 이렇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  


이렇게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니...


누군가.. 언제로 돌아가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세상 모두 잿빛으로 변했고,

10년 계약직&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은..다시 생각해도 즐겁지 않다.


하지만.. '죽음을 곰곰이 들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스무 살이 된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반짝반짝 떠올랐다. 안 해봐서 아쉽다며.. 1평 무덤 속에서 땅 치며 후회할 사소한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삶에 집중할 땐 몰랐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이렇게 많다니.


마흔이지만, 긴 머리는 하고 싶어


머리를 길러보고 싶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긴 머리를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동안은 도전하지 못했다. 어깨까지 길고 매번 잘랐다. 아이를 낳은 후엔 아예 단발로 잘라버렸다. 스타일은 고사하고 긴 머리를 염색. 파마하며 관리하는데 쓰는 돈이 놀랍도록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아깝지 않니?라고 물어보면...

음.. 아깝지만, 그렇게 아깝지도 않다..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실은 나름 찰진 논리가 있다.


평생 죽도록 일하는 이유는 생계를 위해서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 그래서 한번 쓰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은.. 시간을 팔아야 된다. 즉 시간은 돈이다. 돈은 나의 시간이다. 사람마다, 시간마다.. 환산되는 가치는 다르나 근로 소득이 바탕인 사람은 다 인생을 조금씩 떼어 돈을 번다.


시간=돈
시간+시간+시간+시간... =나의  삶(인생)


고로.. 을 쓸 때, 내  일부 팔아 번 돈이라 생각하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인지 or 아닌지, 사고 싶은 물건인지 or 아닌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마흔의 나는 확실히 머리를 길러보고 싶었다. 나의 삶을 조금 떼어 지불하더라도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마흔 하나인 지금까지 잘 기르고 있다.




평생.. 죽도록 일만 하면 너무 슬프다. 살기 위해 돈을 버는데 생활은 톱니바퀴 같고 일은 즐겁지 않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 된다.



더 해빙(The Having)이라는 책을 읽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돈을 쓰라고 한다. 불안하고 조바심 내며 돈을 쓰지 말고 돈을 쓰면서 '있음'을 느끼라고 했다. 나에게 가장 좋은 시절을 선물하기 위해 돈을 조금 쓴다면 불안해하지 말고 있음을 느끼며 쓰자. 적어도 죽기 전에 후회는 안 하게 말이다.


 

애들이 다 자라면 시간도 더 생기고 경제적 여유도 더 있을 테지만, 분명 나는 여기저기가 더 아파지고 늙어다. 이제 늙어가는 내 몸뚱이를 잘 데리고 살 방법 생각하려 한다. 일만 하다 죽지 않게.. '행복했다' 생각되는 순간을 나씩 만들어 볼 작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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