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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Dec 04. 2022

누구에게나 겨울은 있다.

나의 언니 Emma Kim의 그림 이야기

언니의 깡마른 손에는

작디작은 알약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렇게 작게 쪼게는 거야. 시간을 계산해서 말이야.

이 정도면 5시간은 잘 수 있겠다"


이 희고 작은 알약에 의지해

언니가 잠이 든다니...


언니는 불면증이 있었다.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9월 추석 바로 다음 주, 순천 동생집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다섯 형제가 만난 자리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 돌아가시고

99세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진짜 고아가 된 우리 다섯 형제는

마음의 고향을 찾아 동생 집으로 모였다.


둘째 언니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언니는 미국에서 산다.


"언니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10여 년 전 논문을 쓰다 얼굴에 안면 마비가 온 형부가

한국에 오셨을 때

언니도 건강검진을 했다.


딱히 아픈 데는 없지만 언니의 몸은 말라만 갔다.


언니가 뉴욕에 산다고 하면

엄청난 재력이 있거나 성공한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언니는 그냥 평범한 이민 1세대다.


넷째인 내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이라 우기며 무잡job인으로서 ,,

그 억겁의 세월 동안

내 앞 가름도 못하고 있을 시절,


언니는 미국으로 떠났다.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힘들다고 했다.

토종 된장 냄새나는 한국식 인토네이션과 발음을

버터를 백만 개나 바른 혀로 교정할 때까지

언니의 몸은 말라만 갔다.


 차가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는 미국 땅에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서류만 3차례 퇴자를 맞았고

10번 넘게 실기 시험을 보러 간 사연을 듣고는

내 주먹이 다 불끈 쥐어지기도 했다.


미국 땅에서 힘들게 적응하고

취업하고

억울한 일도 당하며

언니는 불면증이란 훈장을 얻게 된 것이다.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누나! 그림 그려!

내가 1년 간 사줄게

무조건 사줄 테니까

누나가 그리고 싶은 그림 그리는 거야"


우리 집안의 괴짜 루팡 남동생은

스무 살 때쯤 집안에 있는 현금을

싹 다 씨가 마르게 도적질 하며

지랄 총량의 법칙을

꽉꽉 채우더니



서른 살에는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때려치우고는

연매출 10억이 넘는,,, 인테리어 업자가 되

남쪽 지방에서는 알아주는,,,,

잡지에도 소개되는,,,,

 번듯한 사장님이 되었다.


그런데,,

그 남동생이

언니의 그림을 무조건 팔아주겠다고 말하며

둘째 언니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제안한 것이다.


'미친놈!

네가 이제야 제대로

미친 짓을 하는구나'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동생의 구두 독점 계약은

그 자리에서 바로 성사돼

가느다란 언니 손에 붓이 들려지게 만들었다.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아마 그때쯤 언니의 불면증은

언니를 놓아준 것 같다.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그림 그리는 나의 언니

Emma Kim


언니가 그린 것은

그림이 아니라

언니의 지난 겨울일 거야


이제 언니에게도 말랑한 봄이 오기를..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나의 언니 Emma Kim의 유화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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