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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구너 Dec 06. 2021

4. 앤드류 로버트슨

리버풀의 신형 엔진

 리세가 로마로 떠나면서 리버풀의 왼쪽 풀백 잔혹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발렌시아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아우렐리우는 경기력이 준수했으나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많았거든요. 폴 콘체스키 역시 1군에서 통할 경기력은 아니었고, 뉴캐슬에서 저렴하게 영입한 호세 엔리케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았죠. 임대로 합류한 알리 시소코는 재앙에 가까운 수비력을 보여주었으며 이적 초반 폼이 좋았던 모레노는 점차 잦은 실수를 연발한 끝에 미드필더가 원래 포지션인 밀너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소방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밀너였지만, 우승 경쟁을 노리기에는 무게감이 다소 떨어졌습니다. 마침 로버트슨의 소속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됐고, 준수한 모습을 보였던 그를 향해 구애가 쏟아지고 있었죠. 번리나 왓포드 등도 노렸지만, 로버트슨의 최종 선택은 리버풀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활약을 생각해보면 공짜와 다름없는 800만 파운드의 저렴한 이적료에 안필드로 입성했죠. 후보로 전락한 선수를 헐 시티에 800만 파운드에 이적시켰기에 트레이드와 유사했습니다.


 입단 초기에는 모레노를 비롯해 밀너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서서히 출전하는 시간을 늘리는데요. 2019년 모레노가 스페인으로 떠나고, 경기력이 올라온 로버트슨은 완벽한 주전으로 발돋움하며 왼쪽 풀백 잔혹사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날카로운 왼발은 팀에 활력소를 불어넣었죠. 프리미어리그를 넘어 현존하는 레프트백 중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로버트슨의 경력이 줄곧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는 셀틱에서 처음 축구를 접하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방출됐거든요. 축구를 접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려는 시점에서 아마추어 리그에 속한 퀸즈 파크가 손을 내밀었고, 도전을 이어갔죠. 열악한 사정으로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습니다. 인고의 시간 끝에 2012년 데뷔를 했고, 준수한 활약으로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던디 유나이티드로의 이적까지 이루어졌죠.


 주전으로 경기에 출전한 로버트슨은 어린 나이지만, 시즌을 성공적으로 소화하며 영플레이어상까지 거머쥡니다. 주가를 높인 그에게 헐 시티가 접근했고, 당당히 프리미어리그 입성에 성공하죠. 새로운 도전이었으나 별도의 적응 기간 없이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왼쪽 측면 수비를 담당했습니다. 준수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강등이 확정되며 아쉬운 시즌을 보냈지만, 로버트슨은 팀에 남아 곧바로 승격을 이끌었고요.


 플레이오프 끝에 복귀한 EPL 무대는 여전히 녹록지 않았습니다. 1년 만에 선덜랜드, 미들즈브러와 함께 다시 강등됐거든요. 저조한 결정력보다 심각한 문제는 치명적인 수비였습니다. 38경기에서 무려 80골을 내주며 독보적인 최다 실점의 불명예를 안았죠. 로버트슨은 출전한 경기에서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도 공로를 인정받아 마침내 우승 경쟁이 가능한 리버풀로 합류하죠.


 처음부터 그를 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죠. 로버트슨을 영입할 당시 다른 후보가 벤 칠웰이나 요나스 헥터 같은 정상급 풀백들이었기에 눈높이가 높아진 이유도 있었고요.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했으나 주전으로 발돋움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리그는 반환점을 향하는데 기회는 몹시 제한적으로 주어졌죠. 줄곧 주전으로 활약한 것과 달리 리버풀에서는 벤치에 머물거나 명단에서 제외되는 수모도 여러 차례 겪어야 했습니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요. 출전하는 경기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그저 그런 선수로 남을 뻔했던 로버트슨은 그야말로 인생 경기를 펼칩니다. 홈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불러들인 리버풀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승리를 거두는데요. 경기에 선발로 모습을 드러낸 로버트슨은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상대를 90분 내내 압박했죠.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최전방까지 올라와 압박 후에 빠른 속도로 수비에 복귀하며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지난 맞대결에서 5골을 내주며 무기력하게 패배했었는데 통쾌하게 복수까지 성공했고요.


 주전으로 경기에 출전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팬들로부터 미친개라는 영광스러운 별명도 얻고, 눈도장도 확실하게 찍었거든요. 이후부터는 당당하게 선발로 나서는 경기가 많아집니다. 공격적인 재능까지 빛을 발해 도움까지 곧잘 기록했고요.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고대하던 데뷔골까지 넣으며 앞으로의 활약을 예고했죠.


 2018-19시즌부터는 팀에 완전히 녹아들며 최고의 기량을 펼칩니다. 왼쪽에는 로버트슨, 오른쪽에는 아놀드가 출전하며 세계 최고의 풀백 듀오를 형성하죠. 로버트슨은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 반 다이크와 살라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철인의 면모까지 보였고요. 도움도 11개나 기록하며 12개를 기록한 아놀드와 함께 도움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습니다. 간발의 차로 준우승에 그쳤으나 좌우 풀백의 활약에 힘입어 살라와 마네가 득점왕에 올랐죠. 리그에서의 아쉬움을 챔피언스리그에서 토트넘을 꺾고 14년 만에 우승하며 보상받았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우승을 노리는 리버풀에서 로버트슨의 존재는 대체 불가했습니다. 지난 시즌 득점에는 실패했으나 2개의 골과 12개의 도움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죠. 코로나바이러스로 리그가 중단되는 어려움도 있었으나 마침내 리그 우승에도 성공합니다. 리버풀에 합류하기 전까지 그의 가치는 100억 원 정도였는데 2021년 기준 1,100억 원으로 상승했죠. 리버풀의 전설인 앨런 케네디는 로버트슨과 아놀드를 세계 어떤 선수와도 바꿀 수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코틀랜드 4부 리그에서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그를 향해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칭하면서 말이죠. 막상 로버트슨은 리버풀이나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덕분이라고 밝혔습니다. 본인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의심할 때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한다면 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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