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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구너 Dec 07. 2021

4. 안토니오 디 나탈레

우디네세의 로맨티스트

 우디네세라는 클럽이 생소하셨을까요? 세리에에 속한 팀인데 중하위권을 웃도는 클럽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강팀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죠. 2020-21시즌도 14위로 마무리하며 유럽대항전에 진출할 수 있는 순위와는 거리가 제법 있었습니다. 유로에 진출하는 이탈리아의 최종 명단에도 우디네세 소속 선수는 없었고요. 같은 중위권 클럽인 사수올로나 토리노가 국가대표팀 선수를 배출한 것과 대조되는 결과였죠.


 셀링 클럽하면 떠오르는 포르투나 모나코, 세비야처럼 우디네세 역시 성격이 비슷합니다. 유망주를 육성해서 비싼 이적료를 받아 파는 방식으로 클럽을 운영하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선수가 우디네세를 거쳐 빅클럽에 입성했습니다. 바르셀로나와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알렉시스 산체스, 인테르의 수문장으로 활약 중인 사미르 한다노비치, 유벤투스와 인테르 소속이었던 콰드오 아사모아가 대표적이죠.


 2021년에도 유수의 클럽들이 군침을 흘릴 법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주장에 선임된 로드리고 데 파울은 9골과 9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우디네세 입단 이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죠. 아스날과의 경쟁 끝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그를 영입합니다. 골문을 든든하게 지킨 후안 무쏘 역시 골리니의 대체자로 아탈란타에 합류했고요.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 이동이 많음에도 1부 리그에서 꾸준한 경쟁력을 보여주니 참 대단합니다.


 안토니오 디 나탈레는 대표적인 셀링 클럽 우디네세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공격수로서 아주 훌륭한 득점 기록과 함께 말이죠. 10년 이상 우디네세를 위해 뛰며 446경기 227골이라는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보통 경기당 0.5골을 넣으면 훌륭한 공격수라고 하는데요. 상당히 오랜 시간 꾸준하게 득점포를 가동한 셈입니다. 우디네세 개인 최다 출장 및 최다 득점 기록을 동시에 세웠고요. 명실상부 우디네세의 전설이며 소속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서 공격수는 그의 몫이었죠.


 엠폴리에서 프로 데뷔에 성공한 디 나탈레는 하부 리그로 임대를 전전하다 준수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돌아와 최전방을 책임집니다. 2부 리그에 있던 엠폴리는 디 나탈레의 득점포에 힘입어 승격의 꿈까지 이뤘고요. 1부 리그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기복 없는 결정력을 선보인 그에게 우디네세가 접근했습니다. 마침 2003-04시즌을 끝으로 엠폴리가 강등을 당하며 이적은 성사됐고, 계속 1부에서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죠.


 디 나탈레가 우디네세에 합류한 시즌은 결과적으로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최종 순위를 4위로 마무리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거든요. 매년 순위표 중간에 머물렀던 점을 고려하면 굉장한 선전이었죠. 디 나탈레 역시 11골을 넣으며 공격에 일조했습니다. 유럽대항전에서는 브레멘에 밀려 아쉽게도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죠.


 첫 시즌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디 나탈레는 이후 본격적인 주전으로 경기에 출전합니다. 시즌 두 자릿수 득점에 연이어 성공하며 공격수로서의 입지를 굳히죠. 2009-10시즌은 디 나탈레 개인에게는 영광이었으나 소속팀은 씁쓸한 결과를 받아 희비가 교차했는데요. 29골로 첫 득점왕에 등극했으나 우디네세는 시즌 마지막까지 강등권 탈출을 위한 사투를 벌였죠. 다행히 다음 시즌은 모두가 웃을 수 있었습니다. 2년 연속 득점왕을 거머쥐었고, 팀은 역대 최다 승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다시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진출했거든요.


 당시 스쿼드를 보면 평소에 알던 우디네세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화려합니다. 수문장 한다노비치를 비롯하여 콰드라도와 베나티아, 이슬라와 인러 등이 포함됐죠. 공격은 디 나탈레가 건재한 가운데 산체스가 보조했고요. 셀링 클럽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선수를 판매했으나 우디네세의 세리에 생존기는 예나 지금이나 진행형입니다.


 연일 최고의 활약을 펼친 디 나탈라에게 나폴리와 로마, 유벤투스 같은 명문 클럽이 접근했습니다. 우디네세는 지금까지의 정책과 달리 디 나탈레의 잔류만큼은 적극적으로 추진했죠. 선수 본인도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팀에 남는 것에 긍정적이었고요. 은퇴 후에 인터뷰에서도 우디네세를 떠나고 싶지 않았고, 결정에 후회는 없다며 한결같은 순애보를 자랑했습니다.


 우디네세 입단 이후 9년 연속으로 10골 이상을 넣었고, 20골 이상 기록한 시즌도 네 차례나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10년 연속 득점 기록을 세우기 위해 은퇴까지 번복했으나 마지막 시즌은 아쉽게도 부진했죠. 공격수로서 좋은 신체 조건은 아니었으나 장신 수비수와 경합해도 쉽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다부졌습니다. 빠른 스피드로 낮은 신장이 지닌 한계를 극복했고, 공격수 및 미드필더와의 연계를 통한 득점에도 일가견이 있었죠. 팀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측면까지 소화하며 다재다능한 모습까지 유감없이 발휘했고요.


 2시즌 연속 세리에 득점왕을 거머쥔 사례는 2000년 이전 라치오에서 뛰던 공격수 주세페 시뇨리 이후로 디 나탈레가 처음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무대에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셈이죠. 리그에서만 209골을 넣어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를 뛰어넘었고요. 세리에 통산 득점 순위 6위에 올랐는데 대부분이 우디네세 시절 기록한 골이었습니다. 30대가 넘어서도 꾸준한 모습을 선보이며 대기만성형 공격수로 이름을 떨쳤으니까요.


 엠폴리와 우디네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간간이 발탁되며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토티와 토니, 델 피에로와 질라르디노, 인자기까지 워낙 쟁쟁한 경쟁자들 때문에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는 못했으나 10년 넘게 아주리 군단을 위해 11골을 넣으며 조커로서 깊은 인상도 남겼고요. 은퇴 이후에는 우디네세가 아닌 스페치아에서 유소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다가 최근 3부 리그 카라레세 칼초의 사령탑으로 선정됩니다. 선수 시절 보여주었던 화끈한 득점력을 감독으로서 재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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