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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02. 2024

불면증 (2)




     그 때 돌연 귀를 찌르는 커다란 경적 소리에 그는 활처럼 구부린 몸을 바짝 치켜세우며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두 개의 커다란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느 샌가 그의 왼편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눈부신 불빛에 둘러싸여 어안이 벙벙해진 현태는 무어라고 소리치는 유리창 너머의 운전자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화가 난 운전자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 댔고 그제야 현태는 자신이 찻길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머리를 조아리면서 길을 비켜주자 노란색 소형차는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아슬아슬하게 현태 곁을 스쳐 지나갔다. 텅 빈 도로에 홀로 남은 현태는 소형차가 충분히 자신을 피해 옆으로 비켜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새벽에 길 한 복판에 멍하니 서 있는 현태가 퍽이나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만취한 주정뱅이나 실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차가 사라진 쪽을 향해 침을 뱉듯 몇 마디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것이 바로 매일 밤 현태가 하는 일이었다. 창가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고양이가 찻길 근처에 얼씬이라도 하면 뛰어 내려가 쫒아버리는 일 말이다. 그는 벌써 6개월이 넘도록 이 일을 해오고 있었다. 여기에는 나름의 복잡한 사정이, 따지고 보면 환경 구조적이고 도시 생태적이며 개발 정책적인 사정이 얽혀있었다. 3년여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얼기설기 뻗어있는 오래된 골목들을 따라 다세대 주택들과 저층 빌라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는 구식 동네였다. 그 당시에는 그의 창가에서 보이는 아파트도 없었고 그의 빌라 옆으로 뻗어 있는 6차선 도로도 오랫동안 방치된 넓은 공터에 불과했다. 잔모래와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터는 낮에는 아이들 운동장으로, 저녁에는 인근 주민들의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러다 공터 너머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면서 공터 자리에 6차선 도로가 들어섰던 것이다. 처음 공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하루아침에 길가 쪽에 위치하게 된 주택들의 주민들은 소음과 매연 때문에 이만저만 불만이 아니었다. 거기다 바로 지척에서 절벽처럼 솟아올라 오후 내내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층 아파트들의 위엄이 그들의 노기를 더욱 부채질 했다. 한동안 그들은 현수막을 내건다, 구청에 항의를 한다, 법원에 청원을 낸다 하며 요란을 떨었다. 하지만 6차선 도로 안쪽으로 버스 정류장이 생긴다는 발표에 곧 잠잠해 지더니 결국엔 모두들 적당히 만족하게 되었다. 

     사실 주민들이 새로 난 도로를 반기게 된 데에는 버스 정류장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난개발 된 동네가 의례히 그렇듯 그의 동네에도 예전부터 길고양이들이 들끓었다. 특히나 모래와 진창 투성이인 공터는 동네 고양이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낮에는 공터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밤이 되면 수 십 마리씩 몰려다니며 공터 근처에 있는 음식물 찌꺼기 수거통을 뒤지곤 했다. 그 바람에 찢어발겨진 음식물 찌꺼기들에서는 사시사철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고 공터 주위로 고양이들의 영역 다툼과 발정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인근 주민들로서는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참다못해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오는 일이 다반사였고 고양이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 이동네 이웃 간의 아침 인사였다. 그의 빌라 아랫집에 사는 덩치 큰 중년 남자도 확 쥐약을 풀어버리겠다며 몇 번이나 길길이 날뛰었지만 차마 하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곤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공터가 없어지고 고양이들이 더 이상 몰려오지 않게 되자 이제야 다리를 뻗고 편하게 자게 되었다고 기뻐했던 것이다. 

     그런데 새 도로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양이들이 차에 치어 죽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러는 것이 아니라 며칠에 한 번씩은 꼭 고양이가 차에 치어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 머리가 깨지거나, 배가 터지거나, 차에 여러 번 깔려 아스팔트 바닥에 껌딱지처럼 눌어붙은 피투성이의 고양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원인이야 구태여 전문가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뻔한 노릇이었다. 고양이들로서는 자신들의 영역이 도로로 인해 두 동강이 난 셈이었고 동물 특유의 미련한 습성에 따라 구태여 양쪽을 오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의 후각은 인간의 열 배 이상 된다는 데 찻길 전체에 진동하고 있는 피비린내는 맡지 못하는 걸까?

     이것이 현태가 매일 밤 보초를 서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단번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들의 죽음과 현태의 행동 사이에는 엉뚱한 비약이 있다고 꼬집으며 대체 현태의 동기가 무어냐고 따져 물을 것이다. 현태가 왜, 혹은 왜 현태가 고양이를 구하러 나섰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들의 지적은 타당하고도 마땅했다. 심지어 현태조차 자신의 행동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수없이 되뇌기도 했다.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데 어떻게 다른 이의 이해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이 괴벽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현태가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밤을 지새우며 보초를 섰던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우연히 창밖으로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 후, 잠자리에 들기 전 야금야금 밤거리를 살펴보던 것이 그만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더더욱 생뚱맞은 건 그가 딱히 동물애호가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애완동물이라고는 어렸을 때 잠깐 노란색 잉꼬 한 쌍을 키워 본 것이 다였고 (두 마리 모두 2개월만에 죽고 말았다), 어디 가서 예쁜 개나 고양이를 봐도 손을 내미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매일 밤 이렇게 졸음을 참아가며 고양이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니, 누구보다 현태 자신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정말 고양이들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고집이나 오기일까?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에 대한, 혹은 무엇에 반하는 고집이고 오기란 말인가. 어쩌면 이것은 단지 흡연이나 손톱 깨물기처럼 나쁜 습관, 혹은 기이한 취미의 일종인지도 모른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결국 6개월 넘게 이어온 취침시간은 오늘도 지켜진 셈이었다. 어느새 잠도 깨끗이 달아나고 말았지만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려면 이제 억지로라도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거리를 내다보았다. 새벽안개가 옅게 깔리기 시작한 찻길에는 신문을 배달하러 가는 오토바이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려다 말고 문득 403동을 올려다보았다. 21층 방도 어느새 불이 꺼져 깜깜했다. 오늘도 현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잠드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불을 끄고 푹신한 침대 속에 몸을 뉘였다. 이불이 온 몸에 바싹 달라붙었다. 베개에 이마를 묻고 막 눈을 감으려는 데 집 앞으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베개에 머리가 닿기도 전에 또 집 앞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현태는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아예 벽 쪽으로 돌아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하자니 화가 치밀어 올라 귓불이 다 화끈거렸다. 한심하긴. 내일부터는 정말 이 짓을 그만 둬야겠어. 아니, 차라리 이사를 가는 게 낫겠어. 눈앞에 보이지만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던 무슨 상관이야. 지금도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살인에, 강간에, 학대에, 사기, 마약, 도박, 자살 등등 별의 별 일들이 다 벌어지고 있는데.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텐데. 그는 어금니를 으득으득 씹으며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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