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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09. 2024

불면증 (3)




     현태는 어렴풋이 잠에서 깼다. 하지만 너무 깊이 잠들어 있었던 탓에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지, 이곳이 어딘지는 고사하고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조차 묘연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어딘가에 있을) 외면을 내려치는 소리 때문에 그는 흐릿하고 무감각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소리는 뾰족하고 긴 못에 대고 두드려대는 것처럼 단호하고 집요했다. 한 번 내려칠 때마다 턱턱 중심이 좁혀지더니 이윽고 단 한 점에 불과한 내면을 정확히 뚫고 들어왔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있는지도 몰랐던 두 눈을 억지로 비집고 열었다. 눈부신 빛, 색깔과 명암, 뒤이어 무거운 공간들이 한꺼번에 그의 두 눈을 짓눌렀다. 

     그는 깨질 듯 한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부터 주물러야 할지 알람부터 꺼야 할지 우물쭈물 하느라 더더욱 골치가 아팠다. 결국 현태는 손을 뻗쳐 핸드폰부터 집어 들었다. 차갑고 맨질거리는 플라스틱의 감촉이 무방비로 있던 그의 손끝을 강하게 자극했다. 처음에 귀가 생기고, 눈이 생기고, 머리가 생기더니 이제 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태초의 인간 역시 이러한 순서로 탄생했을 것이다. 

     [빠빠빠빠 좋은 아침이에요, 빠빠빠빠 좋은 아침이에요.]

     핸드폰에서는 여자들의 째지는 합창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 중 가장 시끄럽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었다. 매일 아침 이 괴성에 가까운 소리에 시달리며 눈을 뜰 때마다 그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불쾌한 기분이 되곤 했다. 그 불쾌감은 인이라도 박힌 듯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기상 효과만큼은 만점이어서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 다시 이 음악을 알람으로 맞춰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열고 알람 정지 버튼을 눌렀다. 요란한 세계가 순식간에 뚝 끊어지며 주변이 텅 빈 것처럼 잠잠해졌다.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꺼진다’란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 철저한 정적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 똑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면서도 그는 늘 잊어버리곤 했다. - 그는 불시에 따귀라도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청히 앉아 있었다. 잠은 완전히 깼지만 어딘지 온전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 무언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옆구리라도 쿡 찔린 것처럼 화들짝 놀라 둥그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7시 4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런, 7시 30분에 가게로 물건이 오기로 되어 있는데. 현태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허둥지둥 욕실로 달려갔다. 최대한 빨리 손을 놀려 이빨을 닦고, 세수를 하고,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매만지기 위해 거울에 비쳐본 그의 얼굴은 벌써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하루 이틀 이를 안 닦는다고 해서, 혹은 세수를 빼먹는다고 해서 무슨 큰 범죄가 되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도 아닌데, 실상 그런 것들을 생략하고 출근한다는 건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참으로 사소하지만 거를 수 없는 생활의 연속. 무언가의 뒤에는 곧바로 또 다른 무언가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하루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욕실에서 뛰어나와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갈아입다가 불현듯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침 햇살이 막 비치기 시작한 거리로 출근하는 차들이 속속들이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려한 것은 아침 햇살도, 날씨도, 자동차들도 아닌 짙은 회색의 아스팔트 바닥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 사이로 비쳐 보이는 아스팔트 바닥은 어젯밤과 다름없이 깨끗했다. 현태는 짧게 콧바람을 내뿜으며 서둘러 갈색 반코트를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그의 가게는 차로 20분정도 거리의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약속시간까지는 5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주색 소형 승합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숨을 삼켰다. 늦어 보았자 10분 안짝일 것이고 늘 배달을 오는 홍민규가 그 정도는 크게 탓하지 않겠거니 싶었만 아침부터 굽실거리며 사과할 생각에 역시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큰 길이 아닌 좁은 골목길 사이로 차를 몰았다. 가게들 대부분이 아직 문을 열기 전이어서 골목은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골목 끝 모퉁이에 연두색 차양을 친 [미스터 토스트]는 벌써 준비를 끝마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태도 이 토스트 가게의 단골이었다. 출퇴근길에 출출할 때면 가끔 한 개씩 사 먹곤 했는데 3000원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깔끔하고 맛도 좋았다. 현태는 주인 남자가 직접 토스트를 굽는 모습을 매번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철판에 노란색 마가린을 듬뿍 바르고 그 위에 식빵 두개를 얹어 두 어 번 뒤집으며 노릇하게 구운 뒤, 새큼한 소스, 계란 프라이, 베이컨과 야채 등을 사이에 끼워주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과정이었다. 현태는 토스트를 받아 들 때마다 이거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수지맞는 장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2분이면 뚝딱 하나 만들 정도로 간단한데다가 재료값이라고 해봐야 고작 1000원정도 되는 것을 손님에게 3000원에 팔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아침이면 아침밥 대용으로, 오후에는 간식으로, 가게 앞에는 늘 손님들이 두세 명씩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토스트 가게 주인은 좀처럼 웃지를 않았다. 굳은 얼굴로 꼼짝하지 않고 뜨거운 철판 앞에 서서 하루에도 몇 백 장씩 되는 토스트를 똑같이 찍어낼 뿐이었다. 주인 남자가 무언가 고민이 있어 웃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그저 마음이 편안하고 무심해서 웃지 않는 것인지, 현태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요즘 같은 시대에 웃고 싶지 않다고 해서 웃지 않을 수 있다는 건 분명 부러운 일이었다.

     현태는 딱 한번 토스트 가게 주인이 웃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그것은 작년 이맘 때로, 그가 토스트를 사면서 주인에게 공 치례를 한답시고 한마디 건넸을 때였다.

     “야,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서 일하시니 좋으시겠어요.”

     물론 그것은 아무 뜻 없이 입 밖으로 나오는 데로 찍어 붙인 말이었다. 그 때 현태는 저녁을 거른 탓에 배가 몹시 고팠고, 마가린 타는 냄새가 유난히 그의 회를 동하게 했던 것이다. 그는 토스트 가게 주인에게서 '그렇죠, 뭐'라거나 '계속 맡으면 질려요' 정도의 싱거운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주인의 대답에 현태는 놀라고 말았다.

     “웬걸요. 이젠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데요.”

     주인은 양 볼을 씰룩이며 웃음을 짓고는 다시 부지런히 식빵을 뒤집기 시작했다. 그 어정쩡한 웃음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태의 뇌리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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