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곡가 초이 Jul 25. 2020

 5년동안 실천해본 육아맘 프리랜서의 재택근무 루틴

음악프리랜서의 삶의 변화,  감동실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나만의 시간이 조금 생겼다.

일이 하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남편 회사 사택에 살고 있었는데, 아기방으로 꾸민 작은방에 컴퓨터와 건반, 스피커를 갖다 놓고 작업실(?)을 꾸몄다.

부족한 자금으로 소박하게 꾸려봤다.

일하고 벌어서 업그레이드하기로 하고, 기존에 쓰던 장비+ 새로 구입한 장비의 조합으로 구성.

그렇게 프리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2015년도)


있는 대로 꾸며본 작업실


높이가 안 맞는 모니터를 두꺼운 책들로 키높이를 맞춰봤다.


말이 작업실이지 고개만 돌리면,  아기용품과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있는 곧 터질듯한 혼돈의 방이었다.

(나중에는 아이의 물건들을 거실로 조금씩 내다 놓고 나의 물건들이 늘어났다.)

그래도 감사했다.


이곳은 어떨 때는 아이의 음악 교실이 되기도 하고,

아이의 음악교실도 되는 작업실


엄마의 컴퓨터 의자가 좋아서 매일 올라타는 놀이방이 되기도 했다.

뱅그르르 회전의자를 그렇게나 좋아했다.



여하튼, 이렇게 작업실을 확보한 후,

육아로 지친 나에게 주어진 이 꿀 같은 몇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   나의 프리랜서 재택근무 루틴 -


1. 아이를 보내고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출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 편한 옷이나 잠옷은 입지 않는다.

3. 화장을 하되 여의치 않으면 립스틱이라도 바른다.

4. 집안 청소는 아이 데리러 가기 30분 전에 시작해서 끝낸다.

5. 점심시간은 12시, 식사는 30분 안에 끝낸다.

6. 중요한 전화가 아니라면 받지 않고, 나중에 내가 다시 건다.

7. 미리 약속하지 않은 즉흥적인 사적인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8. 티타임을 꼭 갖는다.





1. 아이를 보내고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출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들어오면 바로 작업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문을 외었다.

나는 출근을 했어.

여기가 내 직장이야.

방문을 닫고 건반과 컴퓨터를 켜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



2. 편한 옷이나 잠옷은 입지 않는다.

직장에 간다고 생각하면 아무 옷이나 입을 수가 없다.

나도 정말 편한 운동복이나 잠옷을 입고 일하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마음이 흐트러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정장을 입고 일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예의 있게 갖춰 입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어도 외출할 때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옷을 입었다.

그러면 왠지, 긴장이 되면서 집에서 주는 특유의 편안함과 늘어지고픈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3. 화장을 하되 여의치 않으면 립스틱이라도 바른다.

슬프지만, 이젠 밖에 나갈 때 생얼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나는 화장을 하면 밖에 나가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기분도 좋고...

그래서 아이 등원 전에 간단하게라도 화장을 했다.

정말, 바쁘거나 여의치 않을 때에는 립스틱이라도 발랐다.

그러면 일할 때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초췌한 나의 얼굴이 아닌 생기 있는 얼굴에서 좋은 에너지가 발산되는 것 같았다.(지극히 개인적인 기분)



4. 집안 청소는 아이 데리러 가기 30분 전에 시작해서 끝낸다.

집에 있으면 치우고 정리해야 할 집안일들이 계속 보인다.

끝이 없다. 이거 치우면 저게 또 보이고... 빨래하고 나면 또 보이는 빨래들...

나는 눈 딱 감고, 그냥 지나치고서 아이 하원 시간 30분 전에 몰아서 청소를 했다.



5. 점심시간은 12시, 식사는 30분 안에 끝낸다.

식사시간도 정했다. 12시.

메뉴도 간단한 것으로 챙겨 먹고, 먹으면서는 유튜브에서 자기 계발이나 재테크에 관한 강의를 한편씩 봤다.

밥 먹는 시간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기에 그냥 보내지 않았다.

은근히 이 시간이 기다려졌다. 밥 먹는 것도 좋고, 도움이 되는 강의를 보는 게 소소하게나마 행복했다.



6. 중요한 전화가 아니라면 받지 않고, 나중에 내가 다시 건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전화를 하면, 대부분 안부를 묻거나 굉장히 급한 일로 통화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

아침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로 긴 시간을 수다 떨고, 그냥 흘러 보내는 게 아까웠다.

상대방에게 좀 미안했지만, 폰을 무음으로 해 놓고 부재중이 뜨면 '일을 하고 있으니 오후 몇 시쯤에 다시 전화드리겠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면 대부분, 알겠다며 일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정말 급한 전화라면 당연히 바로 연락을 했다.



7. 미리 약속하지 않은 즉흥적인 사적인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아이 등원하고 나고 돌아서면 아파트 단지에 아는 엄마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맨 처음에는 서로 자주 카페나 집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밌었는데, 작업실을 만들고 나서는 이 모임을 줄였다.

일주일 전에 미리 약속을 정하고, 내 작업량을 조절한 뒤 만나서 마음 편안하게 놀았다.

쉽지 않았지만, 즉흥적으로 '오늘 우리 집에서 모일까?' '점심 같이 먹을래요?' 하는 요청을 대부분 거절하고, 다른 날에 약속해서 만나자고 유도했다. 내가 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처음에만 좀 불편했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사적인 모임이 줄어들고 일할 수 있는 시간들이 확보되었다.



8. 티타임을 꼭 갖는다.

티타임은 휴식이자 정신을 가다듬는 좋은 시간이다.

회사에서는 일하는 중간에 힘들 땐 티타임을 갖는다.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 혼자서 일하지만, 좋아하는 커피를 한잔 준비해서 마시면서 쉬기도 하고,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티타임은 10분 정도 가졌었다.

이 시간을 갖고 일하면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렇게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같은 철칙들을 세우고 지켜나가면서 많은 시행착오들도 겪었다.

나는 원래 대표적인 야행성 음악인, 밤에 최적화된 사람이고, 이런 계획적인 생활 방식은 정말 안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달라진 나의 환경과 시간들에 치이지 않으려면, 내가 바뀌지 않고서는 달라질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되는대로 사는, 떠밀려서 주도권이 없이 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병치레할 때는 몇 주씩 일을 집중적으로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한을 맞춰야 하는 일이라면 아이를 재우고, 밤을 새워서라도 칼같이 지키려고 했다.

직장 다니는 워킹맘이라 생각하고, 장소만 조금 특별할 뿐이라며 나 자신을 그렇게 조금씩 바꿔 나갔다.


그러면서 내 삶의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 집은 가장 좋은 일터라는 인식.

지금도 집 방 한 칸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아이를 보내고, 바로 내 작업실로 들어간다.

여유가 된다면 집을 벗어나 다른 곳에 작업실을 근사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재정적인 부담이 크고 그리 오랜 시간을 밖에 머물 상황이 안된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언택트 시대에는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여긴 내 일터야. 내 직장이야'

오늘도 변함없이 주문을 외우며, 출근을 한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건반을 두드려댄다.


두 번째, 나만의 포트 폴리오가 쌓여나갔다.

주로 창작동요를 쓰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작업실을 꾸린 2015년 하반기부터 2020년 지금까지 50여 편의 넘는 곡이 창작동요대회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이것은 나의 경력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창작동요대회들을 경험하면서, 가족들과 여행겸 대회 참석하러도 많이 다녔다. 그러면서 좋은 여행지도 두루두루 다녔다. (지금은 가족들이 귀찮아해서 같이 안 다닌다.)

아이는 대회에 나가는 엄마를 보며, 저 멀리서 "엄마, 엄마다!!!"하고 소리 질러대는 통에, 늘 아빠와 밖에서 귀동냥으로 대회를 관람했다.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알고, 무슨 노래만 나오면 "이거 엄마 노래야?"하고 물어본다.

지금은 곡을 쓰면 아이에게 들려주고 물어본다.

"어때?"

"별로야!"

"어... 그래...;;;"

그렇게 나의 곡 샘플을 듣고, 평가해주는 평가단으로 활동 중이다.


세 번째, 동료가 생겼다.

당시에 동요계에 아는 사람이라곤 한두 명뿐이었던 나인데, 지금은 동요 관련 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대회에서 만난 작곡가 선생님들과 소통하며, 좋은 인맥을 갖게 되었다.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는 동료가 생겨서 기쁘다.


네 번째, 몇 년 전만 해도 동요에 있어서는 불모지였던 온라인 음반 시장에, 창작동요 앨범을 발매하면서 지금까지 10여 편이 넘는 음반을 발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 작곡가들에게 함께 시장을 넓히자며 권유한 결과, 지금은 여러 작곡가들의 동요 앨범들이 온라인으로 많이 발매되고 있다.

현재는 개인 앨범뿐만 아니라, 마음이 맞는 작곡가와 프로젝트 앨범도 만들어 발매하고, 함께 작업한다.

이 온라인 앨범 작업도 작업실을 만든 2015년 하반기에 함께 병행한 일이다.


이렇듯, 아이의 작은 방에서 시작된 아는 이 하나 변변히 없고, 경험도 부족했던 프리랜서의 삶은 지금, 달라져 있다. 그리고 지금도 확장 중이다.

큰돈을 버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돌보며, 한정적인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나름 만족스럽게 나를 키워나가고 있다.

이것은 내가 세운  프리랜서 재택근무 루틴을 늘 마음에 품고, 실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예전에는 아침 7시에 하루를 시작했는데, 하루가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그러나 새벽 기상을 하게 되면서 시간을 더욱 밀도 있고, 여유 있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재택근무 루틴"에 항목 하나를 더 추가했다.

9. 새벽 기상으로 시간을 더 확보하기!

오늘도 화이팅!!


작가의 이전글 괜찮아, 너만의 속도로 걸어가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